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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심기윤옹 50만원 모아「마지막 사업」계획|64년에 세운 현충탑주위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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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아들을 나라에 바친 뒤로 원호사업에 몰두, 원주시 대장동에 사재로 현충탑을 세운 심기연옹(77·원주시 학성2동 311의9)이 정부로부터 지급 받은 아들들의 원호금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은 50만원으로 원주 현충탑주변을「현충 공원」으로 만들 계획임이 현충일인 6일 밝혀져 또 한번 심옹의 깊은 뜻이 널리 알려졌다.
심옹은 6·25사변 중인 50년 7월 학도병으로 나간 3남 익군(당시 서울고 2년)을 잃고 51년1월26일엔 중부전선에 참전한 장남 일군(육사8기·당시 육군대위)의 전사통보를 받았으며 60년 6월 치안국에 근무하던 2남 민씨(당시 경감)가 과로로 순직, 세아들을 차례로 나라에 바친 군경유가족.
『인간 승리』라는 30분 짜리 TV기록 영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졌고 69년도 5·16민족상 수상자 이기도한 심옹은『자신이 세운 원주시 대장동 현충탑주변의 자기땅 6천6백여평을 아늑한「현충 공원」으로 만들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전몰군경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불우한 유가족을 돕는 소박한 마음을 갖게 했으면 하는데 공원조성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사업이 노쇠한 자신에게는 마지막사업이 될 것 같다는 심옹이 원호사업에 처음 몸을 바친 것은 62년초.
세아들을 잃은 슬픔을 되씹고만 있기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많은 사람을 위로하겠다는 뜻을 갖게됐다.
첫 사업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명주군 구정면 구정리 산41일대의 9만평을 개간하는 청파마을 조성사업이었다.
산을 깎아 농토와 집터를 닦았다.
1년만에 8평짜리 집 22채를 지어 군경 유가족 22가구를 입주시키고 농경지 3천6백평씩을 분할 해주고 등기까지 마쳐줬다.
생활조건의 향상에도 계속 힘을 쏟아 이 마을은 현재 강원도의 모범 영농마을이 됐다.
이 공적으로 69년에 5·16민족상, 사회부문 수상자가 됐다.
상금 1백만원도 청파마을의 간이 급수시설에 몽땅 넣었다.
심옹의 뜻은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원주에 현충탑이 없는 것을 보고 64년 원주시 대장동의 자기땅 3천평에 현충탑을 세웠다. 이곳은 곧 원주시의 현충일 기념행사가 열리는 명소가 됐다.
해방후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않고 자기집 믈안에 만들어 논 국기게양대에 매일 상오 6시면 태극기를 게양하고 하오 6시면 내리는「태극기」할아버지로도 통하는 집념의 노인이다.
심옹은 자기가 하는 일에 각 기관에서 지원해 주겠다고 하나 모두 거절한 고집통이다.
죽은 아들을 위로하는 자기뜻은 거창한 일을 벌여 자기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70년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심옹은 부인 조보배 여사와 막내아들, 둘째 며느리, 손자 2명과 함께 며느리가 하는 양장점 수입으로 조용히 만년을 보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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