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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규모7 대지진 시나리오 쇼크 "최대 2만3000명 죽고 967조원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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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0XX년 12월 20일 오후 6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흥청대며 거리를 걷던 사람들의 휴대전화에 돌연 큰 경고음이 울린다. 작은 진동이 발밑에 감지되더니 이어 강한 흔들림이 덮친다. 빌딩의 유리창, 벽면의 타일과 간판이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진다. 수분 뒤 진동이 멎자 거리는 암흑이 됐다. 도쿄의 사무실 건물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그 안에 갇힌 사람만 1만1000명에 이른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오타(大田)구와 세타가야(世田谷)·내리마(練馬)구의 목조주택과 오래된 빌딩 17만5000동이 전파되고, 석유·전열기구가 넘어져 최대 2000곳에서 동시에 화재가 발생한다. 초속 8m의 바람에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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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히(朝日)신문 20일자에 실린 ‘20XX년 겨울’에 찾아올 수 있는 악몽 같은 대지진 시나리오의 도입부다.

 일본이 다시 지진 공포로 술렁이고 있다. 지난 19일 발표된 일본 정부 방재회의의 보고서 때문이다. ‘사망자·행방불명자는 동일본대지진(1만8526명)보다 많은 최대 2만3000명, 부상자는 12만3000명, 귀가 곤란자 800만 명, 건물 전파·전소 61만 동, 경제적 피해 95조3000억 엔(약 967조원)’.

 도쿄도 남부지방을 진앙으로 하는 규모(M) 7.3급의 수도 직하지진이 발생할 경우를 상정해 일본 정부가 새로 추산한 최대 피해 규모다. 최대 1만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던 2004년 추산 결과를 9년 만에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의 상황을 토대로 피해 규모를 조정한 것이다. 일본의 유력지들은 5~6개 면을 할애해 보고서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국민에게 경각심을 촉구했다.

 동일본대지진과 비슷한 M9급이나 M8급이 아닌 M7급 지진이 상정된 것은 현실적인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향후 30년 안에 M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많아야 2% 정도로 보지만 M7급의 발생 확률은 70%로 추산한다. 그래서 일본 언론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일본 수도권을 덮칠지 모르는 긴박성 높은 지진”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정부는 진원의 위치가 다른 19개의 M7급 지진 발생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낳은 것은 ‘수도권 남부인 도쿄도 오타구를 진원으로 한 M7.3의 지진이 겨울 어느 날 오후 6시, 초속 8m의 강한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발생했을 경우’였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 식사 준비에 바쁜 저녁시간대가 상정된 것은 전자기기 사용이 많아 화재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지진이 발생하면 도쿄의 경우 도심의 절반 이상에서 진도 6의 흔들림이, 일부 지역에선 최고 진도인 7이 감지된다. 또 도쿄도와 인근 가나가와(神奈川)·사이타마(埼玉)·지바(千葉)현 등 3개 현의 약 33% 지역에서 진도 6 이상이 관측될 것으로 예상됐다.

 도심을 둘러싼 목조주택 밀집지역에서 대규모의 불길이 번지며 이를 피하지 못하는 거주자들의 인명 피해가 클 것으로 전망됐다. 사망자 2만3000명 중 화재로 인한 희생자가 1만6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교통·전기·가스·수도망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철망이 마비돼 800만 명이 당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 화력발전소가 멈춰 서면서 도쿄전력 관내 주택과 사무실의 절반가량에 약 일주일간 송전이 중단된다. 휴대전화 기지국 절반이 망가지고 하네다(羽田) 국제공항의 활주로 4개 중 2개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경제적 피해와 관련해 보고서는 “공장 피해와 교통·물류 정체로 생산이 뚝 떨어지고, 주식과 환율시장이 동요하고, 현금자동서비스기기의 정지와 일용품 부족으로 인한 혼란도 예상된다”고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긴급대응방안과 부처별 실행플랜 등을 담은 기본계획을 책정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아사히와 마이니치(<6BCE>日)신문은 “이번 추산엔 총리관저와 행정 각 부처의 기능 마비로 인한 중추 기능의 상실, 금융결제 기능에의 영향 등이 포함돼 있지 않다” “인구밀도가 낮았던 1980~90년대의 화재 피해를 참고로 계산해 인명 피해 규모가 너무 낮게 추정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전했다.

 이렇듯 일본 언론들의 질책을 받고는 있지만 ‘지진의 나라’인 일본의 특성상 정치·행정·금융 시스템은 어느 정도의 대비책을 이미 마련해 둔 상태다. 총리 집무실인 총리관저는 95년 발생한 고베(神戶)대지진급에도 견딜 수 있는 면진구조다. 초동 대응에 종사하는 직원들을 위한 일주일치 식량과 음료, 연료가 갖춰져 있다. 위기관리실 직원 약 50명은 관저에서 거리 2㎞ 내에 위치한 숙사에서 출퇴근한다. 총리관저 주변의 피해가 심각할 경우 관저 기능을 중앙합동청사나 방위성 건물로 옮기는 계획은 이미 마련돼 있다. 피해가 클 경우에 대비해 나고야(名古屋)·오사카(大阪)·후쿠오카(福岡) 등 지방 도시로 이동하는 방안도 향후 검토키로 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수도직하형 지진=일본에선 통상 수도권의 육지를 진앙으로 한 지진을 의미한다. ‘직하형’ 지진은 진앙이 해저에 있는 ‘해양형 지진’과 구별되는 것으로, 육지 또는 바다의 얕은 지하에 진원을 두고 발생하는 지진이다.

◆규모와 진도=규모(M)는 진앙지에서 발생한 지진의 크기를 의미하고, 진도는 지상에서 실제로 흔들리는 강도를 가리킨다. 규모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크기를 뜻한다면, 진도는 진앙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 개념이다. 진도의 경우 10단계로 나뉘어져 있으며 7이 가장 강한 흔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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