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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트뷔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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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 공산당은 지난 64년 「흐루시초프」실각 이후로는 처음으로 「폴리트뷔로」(정치국)의 개편을 단행했다.
아무리 선거가 있고 당 대회가 있어도 지도체제나 기본정책이 바뀌기 전에는 정치국 안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정치국이란 소련 공산당의 정책 결정을 하는 최고지도기관이기 때문이다.
정치국이란 혁명의 유혈극을 겪고 있던 1917년10월부터 있었다. 「레닌」「지노비예프」 「카메네프」 「트로츠키」 「스탈린」 「소코리니코프」 「부부노프」등이 그 안에 있었다.
물론 이 때에는 공인된 상설 기관은 아니었다. 한 동안 노농 국방회의라고도 불리던 정치국이 정식으로 설치되기는 1919년의 제8회 당 대회 때부터의 일이다.
정치국의 권위는 「레닌」이 병들어 누운 23년부터 잠시 기울어졌었다. 26년에 있었던 제14회 당 대회에서 「카메네프」는 정치국에 전권을 부여하고 당의 전 정책을 통일시키고 서기국을 정치국의 아래 들어가도록 요구한 적이 있다. 소련 공산당의 기구가 정치국을 정점으로 하여 완전히 틀 잡혀진 것은 그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당초에 정치국이 마련되기는 집단지도체제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독재 체제하에서는 정치국은 아무 구실을 하지 못한다. 「스탈린」시대가 그 표본이다.
2차 대전 땐 거의 모든 정치국원들이 군사위원이 되어 전선에 나가 있었다. 이 때 「스탈린」은 모든 일에 개인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결정을 다른 정치국원들은 사후 승인하는데 그쳤다. 「스탈린」은 또 46년에 15명 정치국 안에 6명으로 구성되는 외무위원회를 만들어 그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드디어 그는 죽기 전 해인 52년의 제19회 당 대회에서 간부회라고 이름까지 바꾸어 놓았다.
정치국이 그 이름을 되찾은 것은 66년의 제23회 당 대회에서 였다. 그러니까 집단체제로 되돌아간 다음이었다.
소련 공산당은 지구위원회-지방위원회-공화국 당위원회-소련 공산당 정치국과 그 최고 수령인 서기장, 이런 식의 「피라밋」으로 구성된다.
정치국은 형식적으로는 서기장이 소속하는 중앙위원회에 의해 지명된다. 그리고 중앙위원회의 총회와 총회사이의 기간에 최고의 지도권을 갖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대회에서 결정된 노선을 변경할 수는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번의 정치국 개편도 지난 27일에 끝난 정원 2백60명의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사실은 「브레즈네프」「코시긴」, 그리고 「포드고르니」 등 3인 사이의 협의에 의한 것이나 다름없다.
외신에서는 이번 개편이 대 서방 화해정책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우선은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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