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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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의 유행은 「파리」에 있는 몇 사람의 「디자이너」에 의해서 결정된다. 「피에르·카르뎅」 「크리스티앙·디오르」 「셍·로랑」…이들이 모두 「파리」의 「셍토노레」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거리에는 언제나 귀부인과 미녀들로 붐비고 있다.
「디오르」나 「카르뎅」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신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꿈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러나 「디오르」의 옷을 사 입는 것은 거의 모두 외국여성이나 특수층이다. 보통 「프랑스」 여성들이 사 입으라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여성들은 천「달러」 가까운 돈을 내어 「카르뎅」의 옷을 사 입는 것을 쑥으로 여긴다. 얼마든지 자기네가 만들어 입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의 아가씨들은 누구나가 「디오르」가 「디자인」한 듯한 옷에 「카르뎅」이 「디자인」한 듯한 「액세서리」를 하고 다닌다. 모두 제 손으로 고안해 만든 것들이다.
인색한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다.
「프랑스」의 「호텔」과 「아파트」의 낭하나 계단의 전등은 한번 켜면 2, 3분 후에 자동적으로 꺼지게 되어있다.
그만큼 알뜰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전기세탁기의 인기가 별로 없다. 천이 결딴난다는 생각에서 모두 손으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접시에 남은 「소스까지 남기지 않으려고 빵으로 말짱히 닦아서 먹는다.
인색한 것은 여성만이 아니다. 의젓한 신사가 켜는 「라이터」의 불은 미풍에도 꺼질 만큼 가늘다. 또 식당에서 계산할 때에는 하나하나 전표를 확인해가며 따진다.
멋쟁이라는 「파리젱」과 「파리젠」 들이 이 정도이다. 이들보다 더 인색하다는 영국인이나 서독인은 더욱 살림에 알뜰하다.
가령 영국에서 양말을 사면 뚫어질 때 꿰매 신으라고 실까지 함께 넣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대생은 연평균 7.5벌의 새 옷을 사 입는다.
최근에 발표된 조사 결과이다. 따지고 보면 별로 많은 것은 아니다. 해마다 유행「모드」가 달라지고 또 철을 따라 바꿔 입어야 하는 만큼 특히 젊은 여인에게 있어서는 옷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랄 판이다.
직장여성이 여대생보다는 적게 5·3벌씩만 사 입는다는 것도 이해할만한 일이다. 자기가 알량한 월급에서 알뜰하게 모은 돈이다. 알뜰하게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 손으로 돈을 버는 직장 여성보다 더 많은 옷을 사 입는 여대생의 심리는 좀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모든게 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시집가면 타낼 수 없는 돈이다. 그러니까 타낼 수 있는데 까지 타내는 게 장땡이라는 심리에서일까.
물론 부모에게 그만한 여유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전 근대적인 사고라고만 볼 수도 없다. 그러나 「파리젠」들의 『인색한 멋』을 본받을 여지는 꽤 많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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