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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비용·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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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위프워프」(Whiff-whaff), 「플림플램」(Flim-flam), 「고시마」(Gossima), 「핑퐁」(Ping-pong) 등, 이 유쾌한 발음의 단어들은 모두 자라의 별명들이다. 「테이블·테니스」라는 국제공통용어가 생기기전까지는 그렇게 불렀다.
「네이볼·테니스」라는 명칭이 공인된 것은 1926년이었다. 그 해 정월 독일인 「레만」박사의 제창으로 「베를린」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비로소 국제탁구연맹이 조직되었다. 당시 참가국은 독일·영국·「헝가리」·「오스트리아」·「스웨덴」·「체코슬로바키아」이었다. 그때만 해도 탁구는 「유럽」인 만의 경기였다. 이들은 1927년 「런던」에서 첫 선수권대회를 열었다. 물론 참가국은 「유럽」의 7개국. 2차 대전 동안 이 선수권대회는 중단되었다가 다시 계속되고 있다.
이번 제32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여자선수단이 받은 「코르비용·컵」(Corbillon Cup)은 1934년 「파리」대회 때 국제탁구연맹 회장이던 「프랑스」인 「마르셀·코르비용」이 기증한 것이다. 여자탁구경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남자선수의 우승「컵」은 또 다르다. 「스웨이돌링·컵」(Swaythling Cup)이라고 한다. 「아시아」인의 탁구실력은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시했다. 일본이 세계경기에 출전한 것은 1951년 「빈」대회 때였다. 그 뒤를 이어 중공이 1953년 「부카레스트」(루마니아) 대회에 처음으로 나갔다.
일본은 참가 2년 만인 52년 「봄베이」(인도) 대회 때 벌써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남자단식·남자복식·여자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줄곧 어느 종목에나 일본이 우승에서 빠지지 않았다. 1959년엔 중공선수들이 남자 단식에서 각광을 받았다. 탁구는 「유럽」무대를 떠나 「아시아」인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다시피 했다. 중공은 작년에 이 탁구경기를 통해 세기적인 해빙외교도 시작했다. 이른바 70년대 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핑퐁외교』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 「도오꾜」대회 때부터이다. 그 후 18년 만인 오늘에야 세계정복의 꿈을 이룬 셈이다.
이번 「코르비용·컵」이 특히 우리의 환호를 받은 것은 「세계정복」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도 기록이지만 강호 중공이나 일본을 눌렀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심리이긴 하지만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통쾌한 것이다.
그러나 「핑퐁」의 유쾌한 소리는 70년대의 세계 해빙을 알려준 「팡파르」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우리의 「코르비용·컵」이 그런 일에도 어떤 기여를 한다면 기쁨은 더 이를데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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