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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냥 해가며 갑상선 수술 개척 … 2만 명 살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4호 18면

캐리커처=미디어카툰 정태권

2008년 11월 당시 연세의료원 박창일(67) 원장은 이듬해 정년퇴임할 예정인 ‘한국 갑상선 수술의 개척자’ 박정수(70·외과) 교수에게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계속 수술을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박 교수는 KㆍC병원 등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박 교수는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실 6개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고, 박 원장은 “당장 지시하겠다”고 대답했다. 박 교수는 연세의료원 128년 사상 처음으로 정년퇴임과 동시에 재임용됐다. 이후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전국에서 갑상선암 환자가 몰려와 2008년 648건이던 수술이 2010년 2201건으로 늘었다. 요즘은 한 해 전국 수술의 10%에 해당하는 3000건 가까이 수술을 한다.

베스트 닥터 ⑪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박정수 교수

박 교수는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란을 거치며 부산 영도구로 돌아와 생활용품 장사를 시작했지만 박 교수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망했다. 가족이 빚쟁이를 피해 시골로 향할 때 박 교수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과 형, 여덟 동생과 함께 가면 내 삶이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교수는 중2 때부터는 입주과외를 시작했다. ‘고아 아닌 고아 생활’을 하면서도 학생회장과 교지 기자로 활동해 박 교수의 형편이 어려운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공부해 경남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의대에 합격했다. 고교 때 입주과외를 했던 집의 주인이 등록금과 1년 생활비를 대줬다.

박 교수는 외과 전공의와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와 슬론 캐터링 암센터에서 연수를 하면서 갑상선암을 전공하게 됐다. 그러나 스승이 없었다. 그는 국제학회에서 책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를 보면 무조건 인사하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특히 세계 최초의 갑상선 전문병원인 일본 노구치(野口)병원의 노구치 박사와 일본 도쿄여자의대 후지모토 교수 등은 박 교수를 제자처럼 아끼며 수시로 논문을 보내줬다. 박 교수는 미국·일본·대만·유럽에 ‘수술 고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몇 달이 걸려서라도 찾아가 ‘눈동냥’을 하며 수술법을 익혔다.

박 교수는 이렇게 배운 수술법을 독자적 연구로 발전시키며 지금까지 2만여 명을 살렸다. 복장뼈(흉골)에서 2㎝ 위를 목주름을 따라 절개해 수술한 다음, 원하는 환자에게는 레이저를 쏘아 수술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무려 500여 편의 논문을 썼고 이 가운데 200여 편을 국제 권위지에 발표했다.

그는 매일 오전 4시 무렵 일어나서 음악을 감상하고 인터넷 논문을 체크한다. 박 교수에게는 음악이 유일한 취미다. 대학 시절 당구장 한 번 못 가 봤고 미팅 한 번 못해 봤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무료였기에 생긴 취미다. 그는 수술방에서도 음악을 틀어놓은 뒤 환자에게 “걱정 말고 푹 자라”고 다독거리며 칼을 잡는다.

아침에 체크한 논문 리스트는 전문의에게 전한다. 외과뿐 아니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의 의사들도 이 논문을 돌려 읽는다. 최근에는 다른 병원 의사들에게도 ‘박정수의 논문 뉴스’가 화제다.

박 교수는 최근 글을 쓰느라 밤을 지새우곤 한다. 환자들이 함께 만든 온라인 카페 ‘거북이 가족’에 올릴 글이다. 카페 이름은 갑상선암의 대부분이 천천히 진행된다고 해서 만들어졌다. 박 교수는 의료진이 환자의 고민을, 환자가 의료진의 고충을 좀 더 알게 되면 갑상선암에 의한 희생이 줄 것으로 믿는다. 정성 들여 고른 음악 동영상도 올린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아스토르 피아졸라부터 최백호의 가요까지 경계가 없다. 5500명을 넘는 카페 회원 가운데는 다른 병원 의사와 환자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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