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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닉슨」대통령은 12일 최근 악화일로에 있는 「크메르」사태를 검토하기 위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의 회의가 중대한 모임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려고 애쓰고 있으나, 이날 회의가 「라오스」·「크메르」·태국·월남 등 4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헤이그」대장의 보고를 들었고, 또 「크메르」사태가 매우 긴박한 것으로 보아 모종의 중대한 단안을 내리지 않았는가 관측되고 있다.
미국의 CBS방송은 「닉슨」대통령의 특사 「헤이그」장군의 월남방문을 계기로 「사이공」에서는 월남군의 「크메르」개입설이 강력히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남군 사령부는 월남군의 「크메르」개입설에 대해서 논평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나, 「메콩」강 연안 육로를 타개치 않고서는 「프놈펜」에 대한 보급을 유효하게 지속하여 「론·놀」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키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므로 월남군이 개입할 공산은 다분히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휴전협정에 따르면 월남·「크메르」·「라오스」등 인지 3개국에 대해서는 공히 외부로부터 군사력 투입을 금지키로 되어있다. 그러나 오늘의 「크메르」의 위기사태가 월맹군의 증강으로 인해 조성된 것임은 추호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월남군이 지상 개입하여 「프놈펜」에 대한 육상 보급로를 타개하는 작전을 벌인다해도 정치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공산 측이 먼저 휴전협정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미국이나 월남이 휴전협정을 어기면서 보복조치를 취하게 되면 휴전협정이 점차로 사문화 되고 인지반도 전체가 또 다시 전화에 말려들지 않을까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치적 화해나 새 정치질서의 건설은 장차의 과제로 미루어 놓고 우선 군사적인 면에서만 정전을 위한 휴전협정을 성립시켰던 것인 만큼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불안의 씨는 늘 내포되고 있는 셈이다.
월남에서도, 「크메르」에서도 지금까지 적대해서 싸워오던 두개 세력을 화해시켜 연립 중립 통일 정부를 세우기로 약속했으나 정치적 화해와 재통일을 위한 작업은 도무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하 휴전이 유지되는가의 여부는 주로 군사력의 균형지속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의 「크메르」사태처럼 연합국이 지지해 온 정부가 도산의 위기에 부닥친 경우에는 군사력 상 균형 회복만이 보다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겠다는 점에서 외부의 군사개입이 정상화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메르」가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산세력의 전면적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고 가정할 때, 「라오스」와 또 그 다음에는 월남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론·놀」정권의 붕괴는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인지반도 전역에 미치게 되는 연쇄작용 때문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미국이 「하노이」측과 협상을 벌여 「크메르」에 대한 군사적 여력을 풀게 한다든가 「론·놀」정부로 하여금 신축성 있는 침공협상 자세를 취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군사적인 면에서 「론·놀」정부를 최악의 위기에서 구출하는 것이 모든 흥정에 앞서는 긴급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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