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정객들 친한파 의원 방문의 허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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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정객들의 「워싱턴」일정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게 있다. 미국회담의 이른바 친한파 의원 방문, 「요담」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친한파 의원이라고 내세우는 의원은 「앨버트」하원의장을 비롯해서 「브룸필드」 「패스먼」 「민숄」 「해너」 「월프」같은 하원의원 들이다.
이 명단에서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친한파 의원이 하원의원들 뿐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상원 쪽에는 한국정치인이 예방하여 무릎을 맞대고 잠시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상대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대미외교의 가장 큰 몫은 군원이다. 군원에 관한 한 수권법안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상원, 그 중에서도 외교위다. 그래서 지난 방문 때 「풀브라이트」와 4시간이상 즐거운 시간을 같이 보낸 김용직 외무장관이 즐거워한 것은 부리가 아니다.
그때부터 한국의 행정부 쪽에서는 상원접근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고 와서 김종필 총리를 자택으로 초대한 「퍼지」의원 같은 사람은 지금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는 눈치다.
이런 기회에 한국국회의원들의 하원 일변도의 「순진한 태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겠다. 도대체 미국의회 안에 친한파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가 자위와 자가선전을 위한 한국정객들의 허구요 신화다.
이곳의 한 고위 외교소식통도 가령 「앨버트」의장은 자기를 친한파로 낙인찍는다면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나기가 좀 수월하니까 몇분 동안 만나서 악수하고 사진 찍고 그리고는 돌아가서 안보외교에 큰 공헌이나 한 것처럼 선전할 때마다 당황하는 것은 미국무성 당국이다.
작년가을 「유엔」총회 때 한국대표단에 합류한 어느 국회의원은 총회가 열리기 훨씬 전 입장하여 대표석도 방청석도 텅텅 비었는데 「이어폰」을 꽂고 점잖게 앉아서 사진부터 찍었다. 방미의원들이 미국방문중에 「귀국 후」를 좀 덜 의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원쪽의 문도 좀「노크」할 때 비로소 실속 있는 대미외교의 지원이 실현될 것이다. <워싱턴=김영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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