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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해 「일치의 정신」갖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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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캔터베리」대주교 「마이클·램지」박사의 방한을 맞아 대한 성공회가 주최한 「교회 연합일치 기도회」가 25일 하오 4시 서울 성공회 주교좌 대성당에서 열렸다. 기도회에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각파를 대표해서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김창렬 「가톨릭」대학장, 장로회의 배명준 목사(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 회장), 김관석 목사(동 총무). 감리회의 박대선·김용옥 목사, 「루터」교의 지원상 목사, 구세군의 「코트릴」사령관, 「그리스」정 교회의 문이춘 신부 등 성직자들과 「피터슨」주한 영국대사 그리고 3백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다. 이천환 한국성공회 대표 주교는 교회일치 기도, 즉 『길 잃은 자를 올바로 인도하시고 흩어진 자를 모으사, 모인 자를 보호하시나이다. 비옵나니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우들에게 일치하도록 은총을 베푸사 저희로 하여금 분열을 피하게 하시고 주의 성교회의 참된 목자와 같이 결합케 하시고 주를 합당히 섬기게 하소서』를 인도했다. 「램지」박사는 특히 일치운동의 본질을 평화운동에 맞추어 설교했다. 다음은 김진만 교수(고려대)가 통역한 강연내용이다.
「요한」의 복음고 제20장 제19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들에게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
오늘 여러분을 뵙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며 큰 영광으로 그 뜻을 성모 「마리아」와 「니쿨라」대 성자에게 전합니다.
성공회는 세계에 널리 퍼져 있지만 한 가족 같은 밀접성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대표로서 오늘 여기에 일치를 위해 오신 여러 교파, 교단의 대표들에게 인사 드립니다.
오늘 이 일치를 위한 기도회는 오늘날 우리세계가 추진하는 거대한 운동의 한 상징입니다. 「아시아」의 교회가 일치를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잘 아는 일입니다. 이 같이 함께 모인 것은 예수가 평화를 위해 축복한 것 같은 정신입니다. 예수는 첫 부활의 날에 사도들에게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평화의 옥입니다. 모든 나라가 평화를 갈망함에 있어 그 상징이 됩니다.
항구적 평화는 모든 나라가 시기심과 공포감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데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 가운데는 보다 깊은 평화가 깃들여 있습니다. 그 평화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 생각합시다.
하느님의 평화는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데서 오는 평화입니다. 이곳은「그리스도」인의 참된 실현입니다. 예수는 죄를 진이, 죄를 의식하는 이들을 만나 『어서 가시오, 용서됐소』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용서의 사실을 예수의 말을 통해 확실성 있게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 죄를 의식 못하고 오만하며 자기 지위에 만족하는 이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을 보이고 겸손을 촉구했습니다.
오만을 버리고 하느님에게 겸손하게 나가는 것, 하느님의 용서를 은총으로 의식함으로써 우리 서로가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겸손의 마음을 새로이 하길 빕니다.
예수는 이웃간에 평화를 가져와 한 가족같이 사귈 것을 가르쳤습니다. 피부나 종교의 장애는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몸으로 사귐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날 우리「그리스도」교회의 분열은 슬픈 일입니다. 이 같은 어려운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다시 찾아야 할 것은 사귐의 정신, 일치의 정신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행동함으로써 일치의 시기를 더 기다릴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일하고 경배하고 기도합시다. 어려운 자, 고통을 받는 자들을 위해 함께 일합시다.
교회들은 가족적으로 얽힌 교회, 서로 짐을 나눠지는 사귐을 펼칩시다. 그럴 때 교구끼리의 사귐, 더 나아가 온 세계 교회의 우의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 또 성도들과도 교제해야 합니다. 예수가 『평화를 빕니다』고 한 것은 인간 내면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 마음의 평화는 현실에서의 도피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의 깊은 평화야말로 가혹한 현실에 용감히 맞설 수 는 힘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가 세속의 평화가 아니고 나의 평화를 준다고 한 뜻입니다.
성인들의 특성은 그들이 현실에 민감했지만 마음속의 평화를 지켰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 교인간의 우의, 교인의 마음속의 평화는 그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예수가 평화를 빌면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의 상처를 보였던 것이 바로 그 뜻입니다. 평화는 십자군에 매달렸던 예수의 상처와 뗄 수 없는 것입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수의 고난을 함께 나눠야 할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고난을 함께 나누고 난 뒤에 그의 평화를 받을 것을 원한 것입니다. 성만찬에서 그의 고난을 함께 나누고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의 뜻을 새로이 하길 빕니다.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를 주시길 빕니다. 합께 모인 우리 모두의 축복 속에서 평화가 세계에 널리 펼쳐 심어지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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