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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종합 분석되는 최고의 사서|삼국 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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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진단학회는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으로 3윌17일 하오 삼일로「빌딩」「벤튼」회관에서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를 주제로 한 첫 한국고전연구「심포지엄」을 가졌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대한 학문 각분야에 걸친 접근논의가 우리 나라에선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고전에 대한 종합적 검토의 기운은 사실 때늦은 것으로 일본에서 이미 「삼국유사 연구회」와 같은 모임이 발족, 우리에 앞서 이 한국고전에 대한 협동연구를 전개해왔다.
이 날의 발표는「선교 사상의 일연의 위치」를 민영규 교수(연세대·동양사)가, 「삼국유사 소재 신화의 일 고찰」을 김열규 교수(서강대·민속학)가,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를 이기백 교수(서강대·국사)가 맡아 각각 학계의 주목을 받을만한 문제를 제기했다.
민 교수는 『신라와 고려의 구산선문은 본시 남종이 아니고 북종』이라는 결론부터 제시해 그 자신의 말대로 『일천년의 전승을 깨뜨리는 연구』로 주목되는 발표였다. 즉 일연이 소속한 가지산파를 비롯하여 신라의 선 불교는 종래 생각돼 온 것처럼 육조혜능 이래의 남종선을 이어 받은 게 아니고 온통 북종의 능가선이라는데 논거를 둔 주장이다.
당초 『삼국 유사』를 편찬함에 있어 왕계·기리·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수·효선 등의 순서로 엮은 것은 양·점·송 고승전이 십과를 세워 서술한 방법과 일치한다. 만약 일연이 남종선의 출신이라면 조당집·경덕록 등 선종 전용물인 전등록과 같은 서술방법을 택했어야 한다.
신라구산 선문의 개산조와 그 계승자들은 한결같이 북종의『화엄경』과『능가경』을 공부한 사람들이고 유일한 예외로 지눌만이 『법보단경』을 읽고 『금강 반야경』을 접했을 뿐이다.
「화엄·능가경」과 「금강경」의 차이는 돈황 석굴에서 신회어록·돈황본단경·신수의 능가사자기 등이 발견됨으로써 이미 뚜렷하게 구분된 것.
선불교의 초조 달마로부터 홍은·신수에 이르기까지는 능가경을 소의 경전으로 한, 능가종으로, 육조 혜능과 신회에서 비로소 능가경을 버리고 금강반야경일색이 되었다고 호적은 설명한바 있다. 능가경은 세친의 유가 유식계이고 금강경은 용수의 중관실상계이다. 신라에서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교에 대립하여 남종선으로서의 구산선문을 세운 것은 그 당시부터 그릇된 것이고 실제 내용적으로는 유가 유식의 능가종 즉 북종을 바탕으로 삼았었다고 민 교수는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구례 화엄사의 개창자로 알려진 연기와 옥룡사의 도선이 오랫동안 별개 인물로 전해왔지만 실은 한사람이라는 것. 선문의 연기가 어떻게 교종의 화엄사를 일으킬 수 있느냐고 흔히 말하지만 도선의 풍수설은 선적인 것이기 보다 종교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의천의 천태학이 사실은 온통 화엄·유식인데 이를 오교양종 가운데 종속에 넣고 그 후계들을 「선사」로 칭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 교수는 다음 몇 개의 통설을 부정했다.
①일본의 홀골곡결천이 『조선 선종사』에서 일연을 『그 사상과 신앙이 모두 불순하다』고 한 것은 일연이 조동종이나 임제종 등 남종선의 계승자가 아니라 북종계임을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②육당 최남선이『삼국유사』를『도리어 일여업이요, 일한사 이어야 하겠지만 이 불용의한 일찬이야말로…』라고 한 것은 푼수에 넘는 말이다. 일연은 여업이나 간사로 글을 쓴 것이 아니고 심혈을 기울인 필생의 본업이었다. 유사는 삼국사이기 이전에 불교사로서 주도한 용의와 완전을 기한 것이다. ③최근세의 김포광 등 불교학자들이 구산선문을 남종으로 파악한 때문에 태고보우의 임제적전을 중시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거꾸로 고려 일대의 선종이 북종이기 때문에 태고보우의 임제종 계승은 남종의 수용으로서 오히려 중시해야겠다는 등이다.
한편 이기백 교수는『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를 살피면서『삼국사기』와의 비교를 전개했다.
정사로 편찬된『삼국사기』가 기전체의 성질상 기존사료의 재편성에 주력했음에 비하여 유사는 내용별 편목에 따라 주제나 사료의 선정이 훨씬 자유로왔다는 것이다.
또 『삼국사기』가 극히 적은 사론을 제외하면 사료와 편찬자의 의견을 구별치 않고 서술한데 비해 유사는 인용과 자기 의견을 구분해 씀으로써 당시로선 독특한 서술형태를 취했다. 금석문·관찰기·고문서·고노의 말·경전 등 광범한 사료를 수집해서 자기의 논거를 충실히 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유사」라는 겸손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일연은 간절히 얘기하고 싶은 것을 위해 막대한 사료수집에 노력한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유사」를 연표(왕력) 역사적 신리사(기리)및 그 밖의 불교 관계기사로 3분한 이 교수는왕력을 부록형식으로 보아 제외하면 유사는 『비합리적인 사실들만을 다룬 역사서』라고 풀이했다.
유사가 신리만을 적은 이유는 ①유구의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 ②한국 고대사를 자주적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적 신리에 대한 서술은 바로 불교신앙의 옹호를 위한 것이며 이점 『유사는 비교적 잘 정돈된 불교문화사』임에 틀림없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또 역사적인 신리를 내세운 것은 한국고대사의 자주적 파악의 노력이었다. 한국사는 중국이 아닌 천과 직결되는 것으로 고조선-위만조선-마한을 잇는 체계를 세워 우리의 오랜 역사적 전통과 그 신비로움을 자랑한 것이다. 그것은 원나라 간섭 밑에서 일연이 민족적 자주의식을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복고적」자세는 한국 현대사학에서 지니는 의의가 덜한 게 아니고 오히려 사료적 가치의 면이나 유교의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면에서 중시돼야 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가령 소박한 표현으로 전거를. 그대로 인용한 것 등은 고대사 연구에 무한한 소재를 제공한다. 또 근대 사학이 짊어진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태도와 같이 신화세계에 대한 이해가 중시된다.
김열규 교수는 신화·민속면에서 『삼국유사』가 둘도 없는 무궁한 자료의 보고라고 말했다. 글자 한자의 해석에 따라서 감춰진 고대의 제의전승도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내용>
이날의 주요 토론내용은 다음과 같다.
▲변태섭(서울대 사대·국사)=『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본기로 한 「유사」이며 고대적 의미를 지닌 불교사적 입장으로 이해돼야 한다. 「유사」를 너무 강조하면서 『삼국사기』의 가치를 부정해선 안 된다.
▲이우성(성균관대·국사)=단군신화를 찾고 민족주체를 내세운 것은 일연만이 아니고 당시 유가의 이규보나 이승휴의 저서에서도 그러하다. 불교만의 자각이 아니고 유불 공통의 시대적 자각이 그런 사견을 낳은 것 같다.
▲고병익(서울대 문리대학장·동양사)=『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서로 반대적이기보다 상호 보존적인 것으로 본다.
▲이병훈(학술원 회장)=일연은 역시 승려이지 사가는 아니다.
그는 너무 신라 중심적이었고 사료의 취급도 임의적으로 고본의 서술을 바꾼 것이 많다.『삼국유사』는 문학적 측면에서의 연구로 앞으로 더욱 바람직하다.<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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