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기의 「테너」가수 『엔리코·카루소』탄생 백주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달25일은 「세기의 황금목소리」「엔리코·카루소」가 탄생한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고향 「나폴리」에 있는 「산·카를로·오페라」극장에서는 저명한 현역가수들로 구성된 「카루소」탄생 1백주년기념 「오페라」가 4월24일 개막되는데 공연직후 전출연자들은 생전에 「카루소」가 즐겨부르던 「나폴리」민요 『오·마레나리·엘로』(오 작은 수병)를 합창한다.
또 「이탈리아 RCA」사는 12강의「레코드」로된 명주에 금박을 한 호화기념 「디스크」 집을 내놓는다.
1873년2월25일 「나폴리」의 한 빈한한 가정에서 많은 형제들중 18번째로 태어나 1921년48세로 죽을 때까지 전세계음악 「팬」들을 흥분시킨 「카루소」는 아직도 최대의 「테너」로 군림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고있다.

<전설적 생애 48년>
목소리 하나로 전세계를 정복한 「카루소」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많다. 최초로 그의 재능을 발견한 「베르지네」씨가 그를 대한 것은 1891년 「나폴리」의 한 식당에서 였다고 한다. 당시 18세인 「카루소」는 「메르젤리나」란 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나폴리」민요등을 불렀는데 하루는 작곡가 「베르지네」씨가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젊은 「카루소」의 노래소리를 듣고 목소리에 탄복,『「카루소」, 자네는 황금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자네를 지도하고 싶으니 나를 찾아오게』라고 하여 장래의 대 「테너」는 「베르지네」씨 문하에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시작했다.
같은해 11월16일은 신인 「테너」 그가 「나폴리」의 「테아트로·누오보」에서 「오페라」『라이코·프란체스코』(친구 「프란체스코」·「모렌리」곡)로 정식 「데뷔」를 한날이다.

<세계를 누빈 인기>
두번째 무대는 「나폴리」서 멀지않은 「카제르타」, 다시 「나폴리」로, 다음은 「카이로」등으로 연주여행을 하였다. 그후 「이탈리아」전국,「러시아」 「브라질」「파리」 공연후 그는 1903년「뉴요크」의 「메트러폴리턴」에 상륙하기에 이르렀다. 「뉴요크」공연은 굉장한 성공이었고 그때의 인기는 그가 죽을때까지 계속 상승일로였다.

<괴벽과 영웅적변모>
미국 공연을 전후하여「목소리의 빌로드」「유리창을 통해 전해오는 바람의 숨결」같은 별명이 붙여졌으며 이때부터 「카루소」신화가 생겨났다.
유명인이 된 「카루소」의 일화들을 더듬어보면 그는 예술가적 괴벽을 드러내는 타고난 「이탈리아」기질, 즉 과장된 영웅의 면모를 보여준다. 「뉴요크」의 한 은행에서 있었던 일. 「카루소」는 신분증도 안 가지고 수표를 환금하러 은행에 들렀으나 은행원이 증명서 제시를 요구하면서 환금을 거부하자 「카루소」는 그 자리에서 「아리아」『숨겨진 조화』 를 뽑아 은행원을 설복시켜 개선장군처럼 은행문을 나왔다는 이야기다.
또 한번은 「스페인」의 「알퐁소」12세의 초대를 받고 「카루소」는 식사재료가 잔뜩 든 가방을 가지고 요리사와 함께 왕궁을 찾았는데 의아해하는 「알퐁소」왕에게 『폐하,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스파게티」만을 먹기때문입니다』라고 했는가하면 또 미국대통령을 만난 자리서 『당신도 나만큼이나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불행했던 결혼생활>
그리고 동전·우표·명화수집에 취미를 갖고 있었고 유명인들의 「사인」을 받아 간직하는걸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의「사인」첩에는 당대의 거장들인「토스카니니」와 「레온카발」의 필적도 들어있었다.
가정문제에 있어 「카루소」는 불행했다. 1897년에 만난 기혼녀 「아다·지아게티·보티」라는 「소프라노」는 「카루소」를따라 남편을 버리고 7년간을 그와 동거, 남매를 두었다. 「카루소」도 그녀를 무척 사랑했으나 1904년 그를 배반한 그녀와 별거했다. 그후 10년간을 「보티」와의 상처로 인해 그는 여성을 멀리하였다가 19년 미국실업가의딸 「도로디· 벤저민」과 결혼하였으나 그녀는 불행히도 2년후 사망했다.
l920년말 「브루클린」의 「뮤지컬·아카데미」에서 『엘리시르·다모래』공연도중 목으로부터 피를 쏟아 중단하고는 2주일후 「메트러폴리턴」서 재기를 꾀했으나 결국 『유??여인』(「할레비」곡) 이 마지막 공연이 되어버렸다. 그는 급성폐염의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가 l921년6월 「이탈리아」로 귀국하여 8월2일 「나폴리」에 있는 「베수비오·호텔」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무대에 선 「카루소」의 네 모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