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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48일만의 진산 재등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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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의 진산계는 예정대로 일요일인 11일 중앙 당사에서 중앙상위를 열어 유진산씨의 당수직 사퇴서를 반려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유씨를 당수직에 복귀시켜 유진산씨의 건재를 과시했다.
유진산씨는 2·27총선을 앞둔 지난 1월 22일 분당의 위협과 당내외 여론의 압력에 밀려 당수직을 내놓은 지 48일만에 다시 당수직을 되찾은 것이다.
유씨의 당수직 복귀에 대해 당내에선 반대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복귀를 밀어붙인 진산 「팀」의 모든 기구에서 절대 다수를 확보해 있었고 이 때문에 반대파도 반대가 실을 거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차라리 마찰 없는 복귀의 길을 터주는 선으로 후퇴했다.
과거의 신민당은 주류와 비주류, 또는 친 진산과 반 진산계의 대립과 경쟁의 양상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구별이 없는 유진산씨 1인 체제로 변모한 느낌이다.
지난해 9월 27일 유진산씨가 신민당 당수직을 차지한 이래 10·17사태와 총선을 거치는 동안 이른바 완강한 반 진산세력 일부는 당을 떠났고 다른 일부는 진산계에 흡수 또는 동화되거나 제거됐다.
이런 파벌의 판도 아래서 유씨를 정점으로 재편된 신민당은 그 체질과 모습이 상당히 달라질 것 같다.
11일 열린 중앙상위에서 당수직 사표를 반려 받은 뒤 유진산씨는 앞으로 당운영 방향을 암시하는 몇 가지 의견을 말했다.
『분파 작용이나 원심적 행위를 하려는 생각을 우리 머리와 행동으로부터 불식해야겠다. 앞으로 나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단호한 결심으로 이런 분파 작용과 원심적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으며 또 이런 사람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이런 유씨의 말은 파벌 싸움의 지양을 역설한 것이라는 선의의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승인하지 않겠다는 풀이가 더 적절할지 모른다.
중앙상위에 뒤이어 열린 국회의원 당선자 대회에서도 유진산 당수는 비슷한 말을 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내가 욕을 먹는 당수이고 「이미지」가 나쁜 당수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고충을 느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타인은 어떻게 생각하든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당을 위해서는 내 소신대로 하겠다』 유 당수는 지난 71년 전국구 파동으로 당수직을 물러난 이래 겪었던 불우와 불명예를 씻고 당무에선 당수로서의 권능을 단호하게 행사하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봐야할 것 같다.
진산 1인 체제로 당권이 정비됐지만 당내의 파벌이나 당권 경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당수의 후퇴 시기와 당수직 계승을 싸고 파벌은 재편될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부당수격인 이철승·김영삼 두 정무회의 부의장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점이다.
유진산씨는 이들 두 사람의 경쟁이 가져다준 협조로 별다른 저항 없이 당수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철승씨가 친 진산으로 돈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이나 유씨에게 비판적이던 김영삼씨가 방향을 바꾼 것은 최근부터이다.
김씨는 유씨의 당수직 사퇴서를 반려한 중앙상위를 예정대로 무리 없이 개최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중앙상무위원 인선의 전권을 맡은 11인위의 소집책인 김씨는 진산계의 희망대로 상무위원 인선을 속결, 11일 중앙상위를 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영삼씨가 이처럼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자신의 당내 위치 설정과 아울러 그 동안 의기소침했던 고흥문-김영삼계의 활로를 트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많다.
고·김 양씨는 그동안 유씨의 당수직 복귀에 비판적이었고 특히 지난 연초 총선 직전 유진산씨의 당수직 사퇴를 강력히 주장, 유씨와 상당한 틈이 생겼었다.
그러나 지난 9일 밤 고·김 두 사람은 상도동 유 당수댁에서 3자가 한 자리에 앉아 그 동안의 소원했던 관계를 풀고 새로운 협조 관계 설정에 관한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유진산씨의 입장에서도 비록 고·김 양씨가 그 동안 자신에게 비판적이긴 했지만 당내에 남은 유일한 비판 세력이고 또 이들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이들을 포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이 얽혀 고·김계는 유씨 주변의 이철승-신도환계에 맞서 유리한 고지 점령을 위한 작업을 추진했다.
이것은 야당에 배당된 국회부의장 자리를 놓고 이철승·김영삼씨 두 사람의 경쟁으로 나타났다.
11일 밤 「뉴서울· 호텔」에서 열린 유진산·이철승·김영삼씨 3자 회합에서 이씨는 정일형씨를, 김씨는 고흥문씨를 끝까지 밀어 유진산 당수는 『지금에 와서도 신·구파 싸움을 재현하겠느냐』고 할 정도로 이·김 양씨의 경쟁은 치열했다.
이제 신민당은 비주류니 반진산 세력이니 하는 색채는 퇴색했지만 유씨를 둘러싼 세력 내부에 만만찮은 고지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김 두 부의장간의 경쟁, 유씨와 가장 가까운 신도환·이민우씨, 그리고 정해영씨 등 유씨 주변 사람들간의 서열 경쟁이 얽혀 있어 이들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거리다.
한편 정일형씨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이른바 비주류 세력은 이미 상당히 약화됐지만 앞으로 새로운 파벌을 형성할 가능성은 적은 듯 하며 상당수는 유씨 주변으로, 일부는 고-김「라인」으로 흡수될 전망이다.
이 같은 당내의 역관계는 오는 5월께 열릴 정기전당대회를 계기로 일단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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