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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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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은 경칩이다.
일조시간이 길어지고, 대지와 물의 온도가 오르기 시작한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봄의 따스한 기운 속에서 깨어나 땅속으로부터 나오는 시후를 의미한다.
「칩」자 속의「충」은 개구리나 뱀 또는 곤충·지렁이류 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동물분류학을 보면 벌레의 종류는 전부 5류 1천8백종이나 된다. 깃을 가진 충은 그 대표가 봉황, 털을 가진 충은 그 대표가 기린, 껍질을 가진 충은 그 대표가 거북, 비늘을 가진 충은 그 대표가 용, 깃도 털도 비늘도 없는 피부만 가진 충 가운데 가장 진보한 것은 성인. 이렇게 충은 5류로 나누이며 그들은 각각 3백60종씩이다.
한대의 백과전서인 『대대기』에 나오는 얘기다. 경칩은 따라서 모든 동물이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시기를 의미한다.
어디 동물뿐인가. 식물들도 이 무렵이면 눈을 뜬다. 어느새 남녘받이 뜰에 다소곳이 서 있는 「라일락」은 파란 싹이 움터있다. 겨우내 볏 짚단에 묶여있던 장미를 풀어보니, 새순이 고개를 내민다. 애동 탓인가 보다.
도시인은 식물이라면 정원의 분재나 장미 한 그루쯤을 생각하기 쉽다. 식물은 단순히 인간의 관상이나 취미의 대상만은 아니다. 산업과 기술의 급속한 발전, 생활환경의 개변, 획일화의 시대는 식물의 가치관까지도 일변 시켰다. 우리는 오늘날 녹색의 자연을 다시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이른바 산업·기술의 발전은 일상생활에 표면적인 편리를 주었을 뿐 생활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오염, 악화시켰다. 사계의 다채로운 변화, 꽂의 향기, 자연의 빛, 새들의 경쾌한 「리듬」등은 서서히 사라지고 화학약품, 기계의 소음, 배기「개스」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에의 향수가 깊어지고, 애틋해지는 것은 그런 생활환경을 상실한 불안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면면한 그 생존의 역사를 통해 자연과의 「밸런스」를 유지해 왔다. 자연과 인간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고, 그 생존의 조건으로 상호 의존해온 관계이다. 자연이 일방적으로 소멸되어가고 있는 것은 그런 「밸런스」를 위협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막연한 불안을 주고 있다. 최근 「딜럭스·빌딩」에 들어서면 남국의 식물이 유연하게 늘어져있다. 그러나 이것은 「플라스틱」제품! 말하자면 자연에의 경개는 이처럼 타락하고, 또 한편 아쉬운 존재가 되었다.
경칩은 그 잃어버린 것들을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계절의 시작을 의미한다. 모두, 모두들 눈을 뜨는 계절. 어둡고 심난했던 겨울이여! 그리고 목마른 녹색의 기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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