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못 말리는 지자체 세금 낭비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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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홍권삼
사회부문 기자

“지방자치단체장을 하다 보면 대부분 연임을 원하게 된다. 꼭 ‘에헴’하는 맛 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4년만으로는 원하는 대로 지자체를 바꿔 놓을 수 없어서다. 아이디어를 내고 초기 절차를 좀 밟다 보면 끝이다. 그래서 다음 선거 때 꺼내 들 무기, 즉 치적을 생각하게 된다. 제일 내세우기 좋은 게 번듯한 대형 행사를 유치하거나 대형 공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영남지역에서 자치단체장을 지냈던 한 인물이 털어놓은 얘기다. 이런 마음은 다른 자치단체장도 마찬가지일 게다. 이곳저곳에서 쉴 새 없이 행사가 열리고 공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행사·공사비용이 문제다.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행사·공사의 효과를 잘 따져 비용 이상의 이득이 돌아올 일만 추진하면 괜찮으련만 꼭 그렇지가 않다. 지자체들은 자동차대회인 전남 영암 포뮬러1(F1) 코리아 그랑프리 등 2010년 이후 치러진 대형 국제스포츠 행사에서 1조원 넘는 적자를 봤다. 1조원을 들여 지은 경기도 용인경전철은 수요 예측에서 ‘하루 평균 16만 명이 탈 것’이라더니 실제는 1만 명에 그쳤다. 이로 인해 날이 갈수록 적자가 쌓이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은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본지가 지자체의 예산 낭비 실태를 파헤친 시리즈 ‘휘청대는 지자체’에 드러나 있다.

 예산 펑펑거리기는 이뿐이 아니다. 수백억원을 들여 수천 개의 관람석을 갖춘 대형 운동장을 지어 놓고는 마을 단합대회용 정도로나 쓰는 군 단위 지자체가 허다하다.

 이런 식의 예산 운용 때문에 지자체와 산하 공기업 재정은 골병이 들고 있다. 빚을 고슴도치 오이 걸머지듯 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자체 부채는 23조3000억원, 지방공기업 부채는 72조5000억원으로 합이 거의 100조원에 이른다. 이 중 상당 부분은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에게 채권으로 팔렸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일부 지자체가 빚을 견디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야말로 재앙이다. 동양그룹 채권 2조2000억원만으로도 금융시장이 뒤집혔는데, 그 수십 배인 지방채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찌 될 것인가.

 금융시장 혼란에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재정에 말썽이 생기면 그 지자체 주민들은 예산이 없어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고통을 겪게 된다. 아니, 따지고 보면 지자체가 쓰는 돈 상당 부분이 주민들 주머니에서 나간 것 아닌가. “내 돈을 허투루 쓰게 할 수 없다”고 주민들이 나설 때 예산 낭비가 뿌리 뽑힐 수 있다. 단체장이 예산을 펑펑 쓰도록 놔둘 것인지 막을 것인지, 열쇠는 유권자인 지자체 주민들에게 달려 있다.

홍권삼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