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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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쪽에 더 초점을 모아야 할까. 나라와 사람, 그 어느 쪽이나 하노이에서 풀려 나온 미군포로의 경우 우울한 얘기가 된다. 전쟁 그 자체가 비극적인 것. 그래서 그 속에 말려드는 모든 사람은 비극적인 존재로 되기 마련이다. 물론 영웅도 많이 탄생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전쟁은 또 수많은 허수아비 용사와 배반자와 비열한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POW 즉 전쟁포로는 그 어느 쪽에 속하는지 분명치가 않다. 혹은 단순한 운이 결정해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월남휴전과 함께 하노이 쪽에서 넘겨주기로 한 미군포로는 5백62명이다.
4만6천명의 전우는 죽었는데 이들은 살아 남은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볼 수도 있고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1천3백명 이상의 미군병사는 아직도 생사를 모르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만큼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미군포로들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미군포로 제1진은 『미국만세, 「닉슨」만세』의 표막을 크게 달고 나왔다.
그들이 싸움터에 나간 것, 그리고 총질을 한 것은 나라의 명령에 좇아서였다. 싸우는게 좋아서, 혹은 죽이는게 좋아서 죽인 사람은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영욕은 모두 나라에 달려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월남전은 미국으로서는 조금도 자랑스러운 것이 못되었다. 승리도 영광도 없이 끝난 것이다.
다만 미국만세라는 기치 속에 모든 상처를 감싸려는 돌아온 포로들의 심정이나 또는 그들에게 더 이상 욕된 심정을 갖게 하지 않으려는 「닉슨」행정부의 배려를 보면 그 가운데 하나의 공통점은 있는 것 같다. 「닉슨」대통령은 그들이 포로생활 중에 혹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절의 지역행위를 백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다행스런 일이다. 그들은 평균 4년 이상의 포로생활 중에 당한 만큼의 고뇌는 모두 당했다고 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덮어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누가 감히 그들을 지탄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보다 더 크고 심각한 시름, 보다 더 외로운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봐야 할는지도 모른다.
석방된 포로들을 위해 준비한 용품들 중에는 유행어 사전도 끼여 있었다. 그들이 갇혀 있는 동안에 말이 통하지 않을 만큼 미국사회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가정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사이 젖먹이가 국민학교에 다니고, 처녀티가 가시지 않던 아내도 30대의 중년부인이 되었다. 그들은 외톨박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우기 그들은 뭣이 정상인지를 가늠하기도 힘들게 된 것이다. 정말로 힘겨운 싸움을 그들은 이제부터 벌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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