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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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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방향 짐작케 한 공천>
며칠 전부터 공화당의 중진 가운데 의외로 한 두 사람이 공천에서 빠지게 될지 모른다고 얘기가 조심스레 나돌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 두 사람이 아닌 중진들의 집단 탈락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10·17」 이후 새로운 정치풍토를 주창해왔다. 돈 안 드는 정치·파당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 정치 얘기였다. 그러고 보면 이번 공화당 공천에서 박대통령의 유신 적정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낙천 된 중진들 가운데는 4인 체제라고 불리던 실권파 몇 사람, 71년의 항명파동 관계자가 포함돼있고 국회의 재경위원장을 맡았던「재정 통」이 여러 사람 들어있다.
낙천 된 중진 몇 사람은 새로 축소 구성된 운영위소위 멤버가 됐고 길전식 사무총장은 그들을 구제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같은 원칙이 전제되어 낙천 된 것 같지는 않다. 12일 아침 운영회의(당무회의)를 할 때까지도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어쨌든 공화당, 앞으로의 기류는 실권파 적 소지를 없애고 총화·평준의 판도를 이룰 것 같다.

<지구당 관리 잘해 공천 따고>
총화·평준의 당내 기류는 공천자 80명 가운데 뉴·페이스가 15명 포함된 것과 8대 의원 중 비교적 성실하다는 평을 받아 온 초선 의원들이 다시 공천 됐다는 사실에서도 점칠 수 있다.
현 아스팍 사무총장이며 전 고대 교수 민병기, 부산대 총장 신기석씨 등의 학계 인물을 비롯하여 지구당을 관리하면서 착실하게 당에 기여해 온 것으로 알려진 손승덕(강원도), 임일변(전남), 황재홍(경북), 이상철(경남)씨 등이 중진을 젖히고 좁은 공천 관문을 통과했다.
이 밖에 전 지사 김효영, 박삼철(전 중정국장), 이도환(변호사)씨 등이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공천의 여러 특이성 중에서 김주인씨의 재 공천도 꼽힌다. 공화당에서는 이제까지 공천에서 탈락됐던 사람이 다음 공천에서 되살아난 전례가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6, 7대 의원을 거친 후 8대 선거를 위한 공천에서 탈락됐던 김주인씨가 이번에 공천된 점이 그것이다. 김씨의 경우 한-일 협력 위를 통한 유공이 이번 공천에 크게 배려됐다고.
공천 자 가운데 최고령은 7대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조씨로 67세, 최연소 자는 서대문에서 공천 받은 33세의 오유방씨, 최다선 의원은 4선의 박준규(달성-고령-경산), 김휴상(진안-무주-장수)씨.
낙천자 중에는 중진 당료 외에 몇몇 예편장성도 탈락됐다. 최영희 공정식 김영관 권오대씨 등이다.
또 북한 출신으로 남쪽에서 선거구 기반을 탄탄히 가졌던 오치성 김재순 민병권씨도 탈락.

<"처가 쪽 지원도 안 되느냐">
복수공천 때문에 이번 선거에선 특이한 선거전이 벌어지게 됐다. 특히 공화당에선「자위평화 전」이 벌어지게 된 것. 12일 훈련원에서 공천 자 회의가 끝난 뒤 길전식 사무총장은 7개 복수 지구의 14명을 따로 모아 특별한 선거전 지침을 시달하고 개별 지구의 문제점을 협의. 지침의 골자는 선거구 안에서 두 사람이 관할 구역을 나누어 신사협정을 맺고 득표 활동을 벌일 것이며 절대로 남의 구역으로 월경하여 활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 이에 대해『다른 구역에 처가가 있는데 처가 쪽에서 움직여 주는 것도 안 되느냐』『다른 구역 안의 여당 후보에 대한 반발 표를 야당 쪽에 빼앗기는 것보다는 다른 여당 후보가 흡수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등의 이의가 제기됐으나 길 총장은『그런 것을 핑계로 같은 여당 후보끼리 경쟁하게 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절대로 예외를 허용치 않겠다』고. 어느 선거구는 3개군 중 1개 군만을 차지하여 인구수가 훨씬 적은 후부가 다른 후보에게『2개 면만 떼어달라』고 요청했다가 깨끗이 거절당했다고.
또 가나다순으로 이름이 뒤 차례인 어느 후보는 12일자 민주공화보에 큼직하게「기호 1」이라고 인쇄된 것을 지적, 『기호 2번인 사람도 있으니 앞으론 그 점을 유의해달라』기도.
두 사람끼리의 페어·플레이를 당에서 당부했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어느새 부터 야릇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이날 길 총장의 지시를 받고 일어서는 자리에서 모 지구의 S씨는 러닝·메이트인 U씨에게『왜 남의 구역에 세단 차를 보내 설치고 다니게 하느냐』고 항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중앙당은 위원장 낙천 지구와 아울러 복수 공천지구에 중점적으로 지역지도 요원을 파견, 상주시켜 집안끼리의 다툼을 방지키로 했다.

<박 총재 자료 내놓고 체크>
11일 상오 청와대에서 진행된 공천 심사에서는 박정희 총재와 정일권 당의장 서리, 길전식 사무총장,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만이 참석했다.
당에서 만든 공천 대상자를 놓고 박 총재는 정당의장과 길 총장에게도 보이지 않은 별도의 자료를 들여다보며 한 사람, 한 사람 체크를 해나갔다는 것.
당이 당초에 만든 공천 내정자 중 청와대의 최종 조정에서 10여명이 바뀐 것 같다는 게 당 간부들의 얘기다.
당 중진들의 대거 탈락은 파벌 조성 요인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는 이들이 많은데 사전 선거운동도 최종 공천 심사에서 적용된 기준의 하나라는 것.
공천 심사에 앞서 김 청와대 비서실장은 당 간부들에게『공명선거를 실시하려는 대통령의 결심이 굳다』면서『대통령 말씀을 안 들어서 잘된 사람이 누가 있으며 잘 받들어서 안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귀띔까지 해주었다는 얘기다.

<현 총무에 "형님 미안합니다">
대변인·사무차장 등 통상의 회의 배석 자들까지 참석치 못하게 한 12일의 당무회의에서 김진만 재정위원장은『낙천이 된다고 해서 운영회의를 한다는 통고까지 안 해주어서야 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
운영회의 참석통고는 구태회 정책위 의장에게도 공식으론 없어 몇몇 사람은 라디오·뉴스로 회의가 있다는 걸 알고 참석했다는데 이 때문에 경위조사가 이루어져 기획실에선『모든 통고를 했다』는 해명까지 했다.
정 당의장은 이날 운영회의에서 길전식 총장의 공천 경위 설명이 있은 뒤 낙천 운영위원들을 다른 방에 개별적으로 불러 낙천을 통고했다.
운영회의를 끝내고 나오면서 어느 당직자는 두 손으로 현오봉 원내총무의 어깨를 껴안고 『형님! 미안합니다』를 연발했고, 현 총무는『괜찮아, 당인이 당의 명령에 따라야지』라면서 육중한 몸으로 당의장 실을 나섰다. 민병권 중앙위 의장은『이젠 정치를 청산할 때가 온 모양』이라고 씁쓸해 했고, 김진만 재정위원장은 길 총장에게『도대체 전화를 여러 차례 해도 받지도 않느냐』면서 섭섭해했다.

<뒤늦게 합류한 백 전당의장>
공화당 공천 자들은 12일 상오 명단 발표 직후 중앙당사에 모여 버스 편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도 주변의 선배·동료 중 누구누구의 얼굴이 안 보인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 후 공천 자 회의가 열린 구의동 소재 당 훈련원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수군수군 공천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 회의 전 구내 식당에서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을 때까지 온통 그 얘기로 화제를 삼았다.
처음 청와대 행 버스가 떠날 때까지 백남억 당의장이 끝내 나타나지 않아 안종열 조직부장이 급히 연락하는 등 애를 태우기도. 백씨에 대해서는『그분이야 으레 알고있겠지』하는 생각에서 바쁜 실무자들이 공천 통보를 미리 해주지 않고 있다가 버스가 청와대로 출발하기 20분전인 10시 반에야 연락했다는 것. 백씨는 그때까지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낙천 된 것으로 알고 있다가 청와대 입구로 직행하여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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