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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새 180도 바뀐 오투리조트 계획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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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주말인 지난 7일 강원도 태백시 오투리조트 스키장. 12개 스키 슬로프 중 초보자용 등 2개에서만 드문드문 스키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방문객은 모두 300여 명. 자동차로 30분 떨어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스키장에는 같은 날 그 30배가 넘는 9400여 명이 왔다. 오투리조트는 이렇게 손님이 없어 지난해에만 200억원의 적자를 봤다. 공사대금 때문에 진 빚까지 더해 오투리조트를 운영하는 태백관광개발공사는 현재 채무가 3400억원에 이른다. 파산 직전이란 말도 나온다. 파산하면 공사에 1490억원 보증을 서준 태백시 재정에 금이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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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시에 막대한 부담을 안기고 있는 오투리조트 사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여기엔 미스터리가 있다. 애초 사업 추진에 부정적이던 보고서 내용이 두 달 만에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오투리조트 사업을 검토한 최초 보고서엔 “문을 열고 25년 뒤까지도 투자한 돈을 거둬들이지 못한다”고 돼 있다. 태백시의 용역을 받은 도화종합기술공사(현 도화엔지니어링)가 2003년 8월에 낸 보고서다. 그러나 태백시와 태백관광개발공사는 그해 10월 발표한 ‘서학레저단지(현 오투리조트) 조성사업 기본계획(안)’에서 “15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했다. 태백시 보고서는 도화의 그것과 표지가 똑같고 형식도 비슷하다. 도화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든 축약본 격이다. 그런데 결과는 “사업성 없다”에서 “있다”로 180도 바뀐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투리조트는 2004년 공사에 들어갔다.

 유태호(50) 태백시의원은 “첫 보고서로 인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게 되자 지자체가 숫자를 적당히 바꿔 사업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리조트를 추진한 태백시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한다. “애초부터 사업성이 있다고 평가됐다. 부정적 보고서는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사업성 없다”는 보고서가 태백시의회 자료실에 비치된 것인데도 그랬다. 홍순일(76) 당시 태백시장은 “처음부터 사업성이 인정됐다. 분석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유태호 의원은 “ 지자체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사안인 만큼 오래 지났지만 사업성 결론이 뒤바뀐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풀려진 수요예측=빗나간 사업성·수요예측 때문에 골치를 앓는 것은 태백시뿐이 아니다. 지자체가 추진한 대형사업 중 수요예측이 맞아떨어진 건 한 건도 없다. 2005년 이후에 준공됐고, 총사업비는 1000억원을 넘는 8개 도로·다리·경전철·리조트의 수요예측과 실제 자동차 통행량 등을 본지가 비교한 결과다. 실통행량이나 이용객 수는 예측의 6∼71%에 머물렀다. 수요예측이 크게 부풀려진 것이다. 지난 4월 개통한 경기 용인경전철은 하루 이용객이 평균 16만1000명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그 6.2%인 1만 명 정도에 그쳤다.

 지자체들은 뻥튀기 수요예측으로 인해 손실을 보고 있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인 사업이 그렇다.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민간사업자가 통행료 등을 거둬 투자금을 회수하되 통행료 수입이 예상에 못 미치면 차액을 물어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이 부풀려졌으니 실제 통행료 수입이 예상만큼 나올 리 만무하다. 본지가 집계한 대형 사업에서만도 수요예측 잘못 때문에 지자체들이 민간사업자에 물어준 돈이 263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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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경전철 보전금 손실 2조원=1조원을 들여 2011년 9월 운행을 시작한 김해경전철은 개통 첫해 하루 평균 17만6000여 명이 탑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17.5%인 3만800명이었다. 지금 상태라면 부산·김해시는 2031년까지 운영권을 쥔 민자사업자에 총 2조1000억원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김해경전철 추진 당시 국회의원으로 반대활동을 했던 김맹곤(68) 김해시장은 이런 말을 전했다. “정부 산하 한국교통연구원이 엉터리 예측을 했다. 그래서 정부에 ‘이런 예측으로 골탕을 먹이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김해시가 해달라고 매달려 사업이 추진됐다’더라.” 당시 김해시 관계자들이 어떻게든 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과장된 수요예측을 부추겼다는 소리다. 이에 대해 경전철을 공약하고 추진한 송은복(70) 전 김해시장은 “타당성이 있다고 교통연구원이 독립적으로 예측한 것”이라며 “ 시가 연구원에 로비를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실수요가 예측치의 6%밖에 안 된 용인경전철에 대해서도 수요예측을 했다.

 경희대 정창수(44·나라살림 연구소장) 교수는 “지자체 대형 사업은 추진 당사자와 손익 내역 등 정보를 상시 공개하고, 수요를 과다 예측한 용역 수행자와 지자체 담당자 등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찬호·전익진·홍권삼·황선윤·신진호·최경호·김윤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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