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경천동지의 강수 - 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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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전>
○·구리 9단 ●·안성준 5단

제5보(49~67)=‘선치중(先置中) 후행마(後行馬)’란 격언이 있습니다. 백△처럼 먼저 희생타를 하나 던져놓고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이쪽 수단을 결정한다는 고차원의 전술이 담겨 있지요. 흑도 정확한 응수를 통해 59까지 살았습니다. 한때는 꽤 고생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 정도면 흑도 많이 안정된 거죠. ‘참고도1’ 백1, 3의 선수 빅이 남았지만 사소하다 하겠습니다.

 구리 9단은 60으로 하변을 지켰고 안성준 5단은 61로 흑진을 확장했습니다. 백은 62로 갈라 삭감에 나섰고 흑도 63의 요소를 차지합니다. 다들 책에 써 있는 요소입니다.

 여기까지 참 평화롭군요. 어차피 피를 흘리지 않고는 승부를 보기 힘든 게 바둑이지만 지금은 조용히 견제하며 탐색하는 시간입니다. 구리 9단, 64로 가볍게 상변 쪽으로 다가섭니다. 흑A가 두렵지 않나요? 순간 안성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갑니다. 긴장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고도2’를 보면 흑1, 3의 강경수단은 백6의 축이 나빠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안성준은 이 약점을 추궁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겁니다.

 65가 떨어졌습니다. 물론 이 좁은 곳에서 살자는 건 아닐 겁니다. 구리 9단은 66으로 차분히 죽음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 67이란 경천동지의 수가 등장합니다. 웬만해선 미동도 하지 않는 구리지만 이 수엔 좀 놀란 것 같습니다. 프로라면 이 수가 축머리라는 건 단박에 알겠죠. 뭔가 사건이 발생할 조짐입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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