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원 셀프 개혁안 미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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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2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보고한 자체 개혁안은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사안의 중대성, 5개월이라는 준비 기간, 국민·정치권의 엄중한 시각에 비춰 그렇다. 전체적으로 조직과 권한의 축소를 방어해보려는 의중이 잘 드러나 있다. “국정원의 정치중립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상의 문제”라는 게 국정원의 입장이라지만 법을 어기면서까지 운영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하기야 입법권을 지닌 특위가 가동된 이상 국정원의 셀프 개혁안은 큰 의미가 없다. 여야가 합의해 개혁안을 만들면 된다. 핵심은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북한 정세를 고려하면 대북 정보와 방첩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야 모두 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 건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각에선 무조건 국정원의 힘을 빼야 한다며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대공·방첩 기능을 위축시켜선 안 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 역시 큰 틀에선 대북 정보역량 강화와 함께 추진돼야 할 일이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국회·정당·언론사에 대한 정보관(IO) 상시 출입 폐지, 내부통제 강화, 정치개입 금지 서약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나 사찰의 개연성을 봉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있는 법도 안 지키는 판에 정치개입 금지 서약이 무슨 실효성이 있겠나. 전시행정 수준의 개혁보다는 정치개입과 사찰 의혹의 진원지인 국내정보 활동을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대공 수사를 제외한 국내 정보활동을 과감히 축소·폐지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국내 정보활동에 종사하는 인력과 조직을 대북으로 돌리면 안보역량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모처럼 추진하는 국정원 개혁은 앞으로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야는 이를 염두에 두고 편협한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건설적인 개혁안 도출에 협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