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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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기를 중심으로 한때하고 그렇지 않은 때하고 가치판단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부인 하나가 이러한 성향이 심하여서 그 발언은 때로 듣는 귀를 의심케 하였다.
예를 들어 여럿이 뭔가를 분배하거나 순서를 정할 때 제비뽑기에 의하는 수가 있다. 자기에게 불리한 꽤가 나오면『이건 틀린 방법이요, 불공평하고 이치에도 안 맞고 세상에 이런 야만스런 일은 없소. 서로간에 의논을 해서 모두가 납득이 가도록 말로다 해결합시다.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는 게 뭐요? 이해하고 양해한다는 힘 한가지 아니겠소?』
좋은 괘가 나왔다 하는 날에는 일은 간단하여 『각자의 복, 부복대로 합시다.』단 한마디로 규정이나 재고의 여지는 있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각기 딴사람들을 상대로 해서라면 또 모르겠거니와 동일한 「멤버」들에게 서슴없이 그렇게 나가곤 한다.
살림의 형편이고 뭐고 비슷비슷한 옆집에서 떡을 가져온다. 양푼의 뚜껑을 열어보고 『요걸 먹으라고 주나.』그릇이 작다는 평을 가하고, 그러나 이쪽에서 보낼 때에는 같은 그릇에 반도 안차게 깔아놓고는 『됐다, 이만하면 강하지, 많아서 맛인가.』그녀의 아우가 허물이 없으니까 『형님, 접때는 이두 갑절도 더 되는 걸 작다고 하시더니….』그렇게 한 마디 할 것 같으면 대답이 또한 명쾌하였다.『그거야 내가 받는 거었고, 이건 주는 것 아니니. 나하고 남하고 어떻게 같이 여길 수가 있단 말이냐.』
이러한 그녀를 대할 때 누구나 어이없어 실소하고, 싫다고 생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워하거나 원한을 머금거나 한다.
무슨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모든 느낌의 바탕에 깔려있는 감정이다. 하나 실상 이런 「사람」이나 이런「수」는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보기 드문 특출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표현이 교묘하게 연구되어 있거나 조금 덜 극단적이어서 그녀의 경우처럼 단순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뿐이다. TV같은 데서 번지르르 훌륭한 발언을 하는 명사들의 의도 속에서도 가끔 유사한 태도를 발견하는 수가 있다.
지나친 욕심이나 그것의 왜곡된 정당화는 최저 선에 내려와서는 물론 법에 의해 응징되고 위로 올라가서는 타인의 정신 내지는 감정에 저촉된다. 정신에 나쁘게 와 부딪는 것을 단호히 행정 할 줄 아는 자세, 이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자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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