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 분식회계 수법] 부채 감춰 흑자로 위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SK글로벌은 부채를 빼내고 가공자산을 올리는 전형적인 분식회계 수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단순하고 적발되기 쉬운 분식이 가능했던 것은 외부 회계감사기관의 감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회계법인에 대한 사법처리와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금융감독 당국의 제도 정비가 뒤따를 전망이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중 가장 큰 부분은 1조1천8백1억원의 외화 외상매입금 누락이다. 해외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수입하면서 기한부어음(유전스)을 발행해 놓고도 회계장부엔 이를 없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유전스의 경우 은행이 먼저 갚아준 것으로, 기업이 은행에 대해 그만큼 빚을 진 것이기 때문에 은행의 채무잔액증명서에 이 사실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SK글로벌은 은행의 채무잔액증명서를 위조해 회계법인에 제출한 것으로 금융감독원은 추정하고 있다.

또 부실자산 대손충당금(채권을 떼일 것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돈)을 4백47억원 덜 쌓고, 외화 외상매출채권을 가짜로 1천4백98억원어치 만들어 놓는 등 허위 자산을 장부에 올려 놓는 수법으로 1조5천5백87억원의 이익잉여금을 부풀린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허위 장부가 회계감사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회계법인이 형식적으로 회계감사를 진행했거나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SK글로벌은 10여년 전부터 같은 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받아왔다.

검찰은 또 2001년 결산의 분식회계가 적발된 만큼 그 전 회계연도의 분식회계 부분에 대한 추가감리를 금감원에 맡겼다. 금감원 관계자는 "1999, 2000 회계연도의 감사보고서에 대한 감리를 집중적으로 벌일 계획"이라고 밝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금감원의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SK글로벌에 대한 대출 사기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은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 허술한 회계 감독체계 등이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가능하게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회계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분식회계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는데도 여전히 이 같은 분식회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기업.회계법인.금감원 모두 과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