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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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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얼마전 동남아일대를 무대로하여 마약밀수를 해오던 한 일본인이 태국경찰에 잡혔다.
그는 태국·대만·한국 등지에 이른바 현지처를 15명이나 두고있었다 한다.
그렇지만 그의 반윤리적인 생활태도를 무조건 탓 할 수만은 없다. 「이커노믹·애니멀」에게는 본시 그런 성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커노믹· 애니멀」이란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전후의 일본인을 두고 평한 말이었던 것 같다.
경제적 이윤만을 앙칼지게 추구해가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별로 좋은 표현은 아니다. 오히려 흉이라고 봐야한다.
그것을 조금도 거리낌없이 요즘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쓰고 있다. 자기네에게 꼭 들어맞는다고 여긴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자성의 뜻도 조금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이커노믹·맨」(Economic Man) 또는 「호모·이코노미쿠스」(hono economicus)란 말은 서양에서는 예전부터 있었다.
「루이스· 멈포드」는 「경제인」의 등장을 근대자본주의가 발생한 14세기부터로 잡고있다.
그는 물론 좋은 뜻으로 풀이하고 「에라스무스」의 예를 들고 있다.
「셍폴」사원장이 그 사원의 부속학교 운영권을 상인들에게 맡기자「에라스무스」는 상인들을 가리켜 그들이야말로 가장 부패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상인들은 윤리적이라고 본 것이다.
고전파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드」의 모든 추론에도 「경제인」이라는 하나의 이념적유형이 전제가 되어 있었다.
그가 상정했던 「경제인」이란『최대한의 수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동기로 삼고 일하는 인간』이었다.
그것은 윤리를 벗어난 이를테면 추상인간인 것이다. 그러니까「경제인」은 비윤리적(immora)일 수 있다거나 또는 그 반대로 꼭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오히려 윤리와는 초월한 탈윤리적(amora)인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스미드」도 현실속의 경제인이란 윤리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따지고 보면「경제」라는 말도 일본사람들이 명치시대이후에 만들어낸 한자어이다. 요즘과 같은 뜻의「경제」란 말은 중국에도 없었다.
있었다해도 『경세제민』『경세제속』등의 뜻을 품고 있었다. <송사>에도 보면 치국제민에 관한 학문이 곧 경제학이었으며, 「도덕경제」라고 붙여서 써왔던 것 같다.
청조말기까지도 학식있는 유능한 인재의 등용을 위한 시험을 「경제특과」라 했었다.
그러니까 윤리적인 것을 전혀 무시하려 들때에는 「경제」라는 한자어나 「이커노믹·맨」이란 영어나 모두 거추장스러울게 틀림이 없다.「이커노믹·애니멀」이라는 말에 새삼 묘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윤리를 저버리면서까지 돈에 집착하고 짐승처럼 욕망을 채우는 그런 인간상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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