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관법의 전면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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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공부는 모든 계량 단위를 「미터」법으로 통일하기 위해 척관법을 전면 폐지하는 한편, 도량형의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10진법을 채용토록 현행 계량법 일부를 다시 개정할 방침이라 한다.
61년에 제정된 현행 계량법에는 64년부터 척관법을 폐지키로 명문화되어 있으므로, 그동안 근 10년간이나 이 법은 제구실을 못해온 셈이다.
상공부의 이번 방침은 급속한 경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여 도량형의 통일 내지 현대화가 더욱 긴요해짐으로써 필요할 경우에는 강제적 수단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다.
모든 계량 단위를 「미터」법으로 통일하도록 법이 정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아직껏 실시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사회 관습 때문이다.
그 좋은 본보기로서는 여전히 재래식인 척관법을 엄수하고 있는 금은방·포목점·정육점 등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최근 몇해째 많은 상품들의 계량에 있어 길이·무게·부피 등이 10진법으로 표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상품의 양산 체제에 따르는 규격화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들 양산 제품들은 메이커 측이 새 10진법에 의한 규격 표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구매자들은 여전히 구척관법에 의한 거래 관습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부정 계량 행위의 소지가 돼 왔다는 것도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다.
그러나 한편 낡은 도량형이 이처럼 좀체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단위가 실제 실생활 또는 상거래 면에서 10진법보다도 더 편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부정 계량 행위가 성행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도량형 단위의 불통일에 있다기보다도 오히려 불량 상품의 범람·상도의의 타락 등 사회적 병폐 속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계량법의 벌칙을 강화하여 「미터」의 사용을 강제화함에 있어서는 아직도 부분적으로 구척관법을 관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과연 나변에 있는가 하는 실정을 깊이 분석하여 너무 일방적인 강제를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회 관습이란 일견 아무리 부조리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을 무작정 부정하게 될 때 이른바 문명 기피적인 부작용이 수 없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명목적인 계량 단위의 통일만을 성급히 서두르는 나머지 실정에 맞지 않는 법 조항을 만들게 된다면 상거래와 경제 활동상으로는 물론,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오히려 유해하고 불필요한 혼란을 빚어냄은 물론, 자칫 법과 행정의 권위를 실추시킬 염려도 없지 않은 것이다.
상공부가 검토하고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 따르면 김은상에 대해서는 종래 돈쭝을 기준으로 하던 거래 단위를 g으로 하되, 한돈쭝인 3·75g을 없애고, 설탕·조미료·식품 등의 「메이커」로 하여금 소량 단위의 포장 생산을 10진법에 따라 규격화하도록 한다는 것 등이다. 또한 도산 매점포마다 지정 계량기의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되어 있다.
이러한 방안 자체에 구태여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다. 또 모든 계량 단위의 통일이 속히 이루어짐으로써 유통의 능률화와 경제의 발전, 나아가서는 문화 향상에 기여하게 됨을 바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관법의 전면 금지를 단행하는데 있어 졸속과 지나친 강압은 되도록 회피함이 좋고 다각적으로 그 준비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도량형 검사 제도의 엄정화, 계량기의 정밀화 등 빈틈없는 보완 조치를 취함과 아울러 국민에 대한 대대적인 계몽과 지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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