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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정신의 순화없는 환경정화란 있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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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72년의 세계는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체제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붕괴된 듯하며 핵전을 피하려는 강대국간의 의도는 실질적척인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치면에서의 변화는 강대국의 권력놀음과 상관없이, 압도해오는 제현대 상황속에서 생존해 가야하는 전세계인간에게 어떤 회의를 갖게하는 것인가?
본사는 새해를 맞으면서 세계 여러지역에 파견되어 있는 특파원들로 하여금 정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세계적 시인·작가들의 입을 통해 현대문명의 평가를 내리게 하고 현대인간이 해결해 나가야할 상면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일작가 정상광청

<동경 박동순 특파원회견>
박 = 우선 귀하가 느끼는 일본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정상 = 나는 본시 여행을 즐기는데 여행에 나설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의 모든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향인 「구우슈」(범주)지방에 가보면 갈때마다 그렇게 깨끗하다고 하던 일본의 바다가 오염 되어가고 있는 것을 새삼 느끼게된다.
이렇게 가다가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은 완전히 『오염된 바다』속에 뜬 한가닥 섬이 되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박 = 인문을 위해 만든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만든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겠다. 결국 경경의 오염은 어떻게 해서 생겼다고 볼 수 있는가?
정상 = 역시 인문의 욕구인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막으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히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인간 정화와 순화없이는 건전한 환경 정화는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박 = 물질풍요와 정신풍요와의 상관관계에서 볼 때 정신적 풍요가 더 중요하다고 단언하는 것인가?

< 정신면에 손쓰기 늦은감 >
정상 = 두개를 인간생활에서 딱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역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질에 집착하다보면 무엇인가 인간에게서 결핍되고 있는 것을 깨닫게되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의 풍요만이 아닌 정신적인 풍요를 아울러 가져야만한다.
현대의 인간들은 믈질 풍요에만 줄달음치다 보니 이제는 정신적 풍요에 손을 쓰기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 = 일본에서는 공업과 기업을 위해서는 부득이 바다도 오염되고 공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정상 = 물론 돈벌기에 열중하고 기업 번창을 지상목표로하는 「이커노믹·애니멀」=(경제동물) 일본인에게는 그렇게 생각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인간에게서 보다 근븐적인 그 무엇이 잃어져가고 오염되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박 = 환경공해를 주로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밖의 공해도 큰 문제일 것 같은데….
정상 = 교육공해가 또 일본에서는 대단한 것이다.
물론 교육의 병폐는 전전부터의 일이지만 학력주의, 곧 수험위주 교육은 이제 어린이들, 청소년들의 성품을 좀먹어서 처참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농촌의 부모들까지도 무리를 해서 자식을 동경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꽉 젖어있는 것을 나는 보아왔다.
16∼19세이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때인데 부모밑에서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건전한 가정교육을 받지 앉고 도시에 홀로 던져져서야 인격형성에도 결함이 생길 것이고… 그밖에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것인가.
박 =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일본에 와보니 너무 자유가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더 불안스러운 느낌을 갖게된다.
특히 동경은 여러가지 면에서 현대를 대표,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상 = 동경은 그것 자체가 산업주의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산업주의의 막다른 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기업이 번창하고 고임금으로 흥청거리고 있지만 산업주의의 앞길에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박 = 본사인 중앙일보사에서 최근 수년간 힘써온 「캠페인」이 『도의문화의 재건』이라는 것인데 이 「캠폐인」의 목적은 현대사회의 특성인 인간성의 상실을 다시 찾아내자는 것이다.

< 자기와 타인 함께 구원을 >
당신의 얘기도 결국 인간성의 상실을 가리킨 것이 아닌가?
정상 = 현대의 위기의식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점일 것이다.
한개인이 자기만을 구원한다고 재서 사회가 구원되고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즉 한개인이 자기만의 만족과 자기 가족만의 비족에 급급한 나머지 파생되는 것이 인간성의 상실이 사회부정의의 원천이 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와 타인이 모두 함께 인간성을 회복함으로써 구원되어야 참다운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박 = 현대사회는 또한 도의심이 결여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러한 경향은 어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정상 = 도의심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선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최근 전차나 기차에서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는데 여기에서 문제는 그들의 행동이 도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전혀 도의심이라는 개념에 개의치 않고 있는 사고방식에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의 행동기준을 찾을수가 없게된 사회상황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있다.
즉 자본주의와 그것을 뒤집은 듯한 관료적 사회주의의 두개의 틀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도 문제가 되겠지만 어떤틀에 매어 버리려는 관료적 사회주의도 이에 못지 않게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면 한쪽은 이익 추구만이 전부이고 다른 한쪽은 인간을 하나의 틀속에서만 생각하려는 몰 인간조직이다.
박 = 일본에서는 「전후」는 끝났다고 말하고 있고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무엇인가 전후체제가 한 고비를 넘기는 듯한 인상인데 이점에 관해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
정상 = 물론 「전후」는 끝나가고 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전후」가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좀 논리가 비약되는 것 같지만 예를 들면 일본산업은 한국의 저임금에 의존하는 형편인데 이것은 전전과 같은 것이 아닌가.
전전에 일목 탄광의 가장 험한 일은 싼 노임을 감수하는 한국인들에게 강요 되었었다.
지금도 싸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의 산업은 한국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다.
침략을 하고 그것으로 패배한 일본이 겨우 20년만에 또 그짓을 하고 있으니 이점에서 보면 「전후」는 끝난 것이 되고 만다.
박 = 전후가 끝나간다는 것과 관련해서 지난 몇해동안 국제사석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있는가?
정상 = 자기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진실이라든가 정의라고 하는것은 헌신짝처럼 여기는 사고가 도처에서 저항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중공·소련등 모두 마찬가지다.
자기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불사한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인간이 자기 혼자살 수 없는 것처럼 한나라가 타국과 같이 공존하지 않으면 참다운 번영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경공항에서 「다나까」수상을 맞는 중공측이 양국가를 동시에 연주하던 상황이 생각난다.
전혀 예상밖의 일이나 현실적인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닉슨」과 중공,「닉슨」과「모스크바」의 관계도 같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박 =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인간과 의식과 행동도 변모하고 있는데 그 흐름의 본지흐름은 어떤 것인가?
정상 = 물론 사회조류는 변화되고 있다.
결국 사회가 또 인간이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테마」로 취사선택은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적군학생의 조급한 「린치」사건에도 사회눈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물며 살인한 자가 자기의 살인행위를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인간의 본질을 묘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알 수 없고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 예술가 역할은 인간영혼 해방 >
박 = 정치의 변화, 사회의 변천 등과 같은 이른바 주변환경의 변화속에 건실한 의미의 시인이나 작가의 역할의 뜻이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정상 = 아니라뇨 달라진것은 없다고 본다뇨. 역시 고대로부터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인간영혼의 해방이었고 인간생활의 개발이었다.
좀더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인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며 인간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표현이므로 그것이 본질적으로 달라졌을리는 없다.
박 = 그러면 역할이 달라진것이 아니고 역할의 중요성이 변질된게 아닌가?
정상 = 그렇게 생각된다.
지금은 종교도 상업과 밀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져 실제로는 종교는 구원의 방법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종교자체도 구원받기 어렵게 되어있다.
철학체계도 허물어져 가고 있으므로 예술이 철학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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