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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나도 떨어지려나 떨고 있는 금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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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신한은행의 20년차 팀장 A씨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본점과 지점을 두루 거치며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은 끝에 내년께 지점장 승진을 기대했지만 은행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내년 초 실적이 좋지 않은 지점 50개를 폐쇄하기로 했다. 대신 신설 지점은 5~10개로 최소화할 예정이다. 이러면 신한은행의 지점 수는 지금(941개)보다 최대 45개 줄어든다. 입출금이 중심이던 점포의 성격도 기업금융이나 개인 재무설계 중심으로 확 바뀐다. A씨는 “지점장 자리가 줄고 구조조정 압력은 커졌으니 승진을 기대하기보다는 자리를 보전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연말 보너스를 기대했던 예전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은행원들이 올겨울 유난히 추위를 타고 있다. 은행들이 예외 없이 대대적인 점포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점포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해 수익성 악화를 막고, 남는 인력은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겠다는 취지지만 직원 입장에선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7개 시중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스탠다드차타드·씨티)은 내년 점포 수를 지금보다 120개(26%) 줄이기로 했다. 현재 4672개인 점포 수가 내년 말이 되면 4552개가 된다.

 국내 최대인 1202개의 점포를 보유한 국민은행은 내년 초 55개의 적자 점포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우리(5개)·하나(10개)·씨티(5개)도 각각 지점을 줄인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중장기적으로 지점 25%(100개)를 축소할 계획이다.

 축소된 지점의 인력은 현장영업·온라인마케팅과 같은 업무로 재배치된다. 내년 1000명의 팀장급 직원을 외근영업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우리은행이 대표적이다. 전국 점포(993개)당 1명꼴로 내근 인력을 줄이겠다는 게 목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팀장급들은 창구에서 직접 고객을 상대할 일이 적기 때문에 내근하는 것보다 현장에 나가 고객을 유치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직장인을 위한 야간점포와 인터넷뱅킹 고객 상담을 위해 만든 온라인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 인력을 집중 배치한다. 씨티은행은 통폐합된 점포의 인력 중 상당수를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재무설계 전문가로 키우기로 했다.

 이런 구조조정에 특히 불안해하는 건 지점장과 팀장급 간부들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경영진은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외근 영업직이나 상담직처럼 역할이 불분명한 자리를 맡겨 자연스러운 퇴직을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팀장급 인사는 “은행의 ‘꽃’인 지점장 자리가 줄어들면 승진을 앞둔 팀장급들은 근로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7개 은행의 1~9월 순이익은 3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원)에 비해 1조6000억원(32%) 줄었다. 수익성 악화의 단기 요인은 저금리 기조에 따른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 축소다. 예대마진은 국내 은행 이익의 90%를 차지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국내 은행의 예대마진은 2.53%포인트로 지난해 말 2.61%포인트보다 0.08%포인트 줄었다. STX·동양과 같은 부실기업 영향으로 대출 손실이 많아진 영향도 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발생한 부실채권은 22조9000억원어치로 전년 동기 대비 27% 늘었다.

 큰 틀에서는 인터넷·모바일뱅킹의 확산이 결정적이다. 은행을 찾는 고객이 줄면서 적자 점포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금융거래 이용자 중 인터넷·모바일뱅킹 이용자는 25.9%에서 33.9%로 8%포인트가 늘었다. 은행들은 인터넷뱅킹은 창구거래보다 수수료가 싸기 때문에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권 노사가 임금체계 개편에 머리를 맞대 각각 고용 안정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점포 구조조정만으로는 은행 수익성 개선에 한계가 있어서다. 한 증권사 은행담당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연공서열에 따라 팀장급이 되면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는 구조”라며 “선진국 은행처럼 성과연동형의 인사관리 체계를 도입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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