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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여자프로골프 선수회장의 일탈과 양심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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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성호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1925년 US오픈 골프대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스물세 살의 젊은 선수가 어드레스를 하던 중 실수로 공을 살짝 건드렸다. 공이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러프 속이어서 본인을 빼곤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스스로 벌타를 매겼다. 벌타 때문에 그는 연장전에 가야 했고 우승을 놓쳤다.

 사람들이 그의 정직성을 칭찬했다. 그러자 그는 “(벌타를 매겼다고 칭찬받는 것은) 은행 강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칭찬받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골프 선수로서 정직하지 않은 것은 은행을 터는 것만큼 큰 죄라는 뜻이다. 이 선수가 5년 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보비 존스다. 그는 그랜드슬램이 아니라 스스로 부과한 이 벌타 때문에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게 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소속 선수 이정연(34)이 경찰관의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로 기소돼 11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정연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후 지구대에 가서도 소란을 피우고 욕설을 하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음주측정을 거부했다. 반성하는 태도도 미흡하고 공권력을 경시하는 정도 또한 심각하다”고 했다. 이정연은 음주측정 요구를 네 차례 거부했고 욕설과 함께 주먹으로 경찰을 때렸다고 한다.

 KLPGA에서 이정연은 단순히 선수 중 한 명이 아니다. 선수들을 대표하며, 흔히 선수회장이라고 불리는 선수분과위원장이다. 선수회장은 KLPGA의 얼굴이며 협회 이사이기도 하다. 이정연은 올해 선수분과위원장이라는 지위 덕에 특혜를 받았다. 출전자격이 없었는데 이사회에서 선수분과위원장은 대회장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특별히 매 대회 초청 형식으로 출전하게 했다. 이 때문에 다른 선수 한 명이 경기에 나갈 수 없었다.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지난 3월 일어났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경찰을 때려 집행유예까지 선고될 사안이었으니 사건 직후 선수회장에서 사퇴했어야 했다. 협회도 이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옳다.

그러나 이정연은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대로 선수회장으로 활동했다. KLPGA는 이정연이 이 사건에 대해 협회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는 12일 여러 차례 이정연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보다 정직과 에티켓이 중시된다. 넓은 들판에서 심판 없이 본인이 사인한 스코어카드를 믿어야 하는 양심의 스포츠다. 투어가 커지면서 정직과 에티켓 등 골프의 기본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다.

성호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