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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구스'가 보여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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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바로잡습니다’라도 해야 할 판이다. 꼭 한 달 전 쓴 칼럼에서 나는 아무리 요즘 90년대 노래나 영화가 다시 유행한다지만 패션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예측했다. 그러니까 이스트백 배낭, 닥터 마틴 워커, 게스·GV2 청바지처럼 너도나도 똑같은 수입 브랜드를 걸치고, 이를 똑같이 베낀 짝퉁이 활개 치는 시대는 추억일 뿐이라 장담했다. 그건 취향도 없이 남들 따라 멋을 냈던 90년대 ‘패션 개도국’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요, 패션 한류를 꿈꾸며 세계 무대로 나가자는 한국 패션의 위상과는 맞지 않다는 근거를 댔다.

 한데 완벽한 오보였다. 요즘 ‘캐나다 구스’의 열풍을 보면 그렇다. 이름 그대로 캐나다 브랜드인 이 패딩은 영하 30도 극지방 추위도 이겨낼 방한복이라는 마케팅 덕에 한 벌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데도 인기를 끌고 있다. 3주 전 대형마트 특판이 북새통을 이룰 때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국내 물량이 소진되는 속도만큼 ‘캐나다 구스 구하기’는 더 필사적으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인터넷 직접 구매와 공동 구매는 기본, 캐나다를 휴가지로 잡거나 이도 못 되면 현지에 사는 친척·친구에게 보내달라 부탁하는 사람 등이 생겨난다는 얘기가 속속 들려 온다. 그 와중에 중·고생 사이에선 부모 허리를 휘게 만드는 ‘신(新) 등골 브레이커’로 등극했으니, 실제 한 엄마로부터는 아들이 시위하듯 이 한파에 외투 없이 등교하는 통에 안 사줄 수가 없다는 고민도 들었다.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싶은 게 ‘코리아 구스’다. 국내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캐나다 구스’를 그대로 베껴 만든 옷을 빗댄 말인데, 무려 19개 업체가 유사 디자인에 로고만 바꿔 20만~3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캐나다 구스 측이 경고장을 보내고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와중에 더 기막힌 일은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선 로고만 따로 바꿔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흔히 봐 온 캐나다 구스가 다 진짜는 아니라는 얘기이고, 그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러면서까지 입어야 하나 한숨만 나온다. 캐나다 구스가 수입 브랜드라서, 터무니없이 비싸서라기보다 결국 우리의 의복 수준이란 ‘너도 입으니까 나도 입는다’는, 취향보다 과시가 우선인 9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꼭 60년 전, 한 신문 기사(동아일보 1953년 7월 16일자)는 전후 일부층에서 외제 양복이 유행하는 사회상을 그렸다. “… ‘비로-드’ ‘레-스(레이스)’ ‘마카오 양복지’ 등이 시장에 범람하고 비좁은 골목에까지 널리기 시작하여 지금은 ‘마카오’ 산이 아니고 ‘비로-드’나 ‘레-스’가 아니면 행세를 못할 지경이 되었다.(후략)” 여기서 마카오 양복지나 비로드·레이스를 캐나다 구스로만 바꾸면 지금도 유효한 문장 아닌가. 90년대로의 회귀는커녕 처음부터 50년대에 머물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