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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름만 믿고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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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세영 식당(위), (2) 장진우 식당(아래).

‘철수네 분식’ ‘영희슈퍼’.

 어릴 적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가게 이름들이다. 간판만 봐도 누구네 가게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정겹기는 하지만 촌스러운 느낌 때문인지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주인 이름을 딴 가게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그것도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라 세계 각국 음식이 모여 있는 가장 트렌디한 경리단길의 잘 나가는 레스토랑으로 말이다.

 이탈리안 음식점 ‘예환’과 메뉴를 종잡을 수 없는 ‘장진우 식당’, 경리단길 초입의 이자카야 ‘손지영의 핫토리키친’이 바로 그 식당들이다. 또 북한남 삼거리 쪽으로 내려오면 ‘윤세영 식당’도 있다.

 국군재정관리단부터 800m쯤 이어지는 경리단길엔 세계 각국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빼곡하다. 식당 이름만 봐도 대충 어느 나라 음식인지 감이 온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와 티라미수가 유명한 ‘비스테카’는 딱 봐도 이탈리아 식당이다. ‘비스테카’란 이탈리아어로 스테이크를 뜻하니까.

 이런 외국어 간판이 넘쳐나는 경리단길에 소박한 자기 한국 이름을 내세운 식당 주인의 속내는 뭘까.

 2003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예환을 운영 중인 배예환 셰프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가정식 이탈리안 음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동양적 식재료나 한식 소스를 곁들이는 등 나만의 요리를 하고 있다”며 “내 이름이 곧 내 음식이기 때문에 식당 이름도 내 이름을 그대로 따서 쓴다”고 말했다.

 10년 전 처음 예환을 낼 때만 해도 “한식당 같다”느니 “무슨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인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던 손님들이 이제는 “셰프의 자신감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며 더 좋아한단다.

 2010년에 생긴 ‘장진우 식당’은 사실 간판도 없다. 16.5㎡(5평) 남짓 작은 가게를 찾는 손님끼리 서로 이곳을 가리키며 부르는 이름이다. 정해진 메뉴가 아예 없으니 주문을 할 수도 없고, 갈 때마다 포토그래퍼로도 활동 중인 주인장이 해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한식도 양식도, 그렇다고 무슨 가정식도 아니지만 불평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늘은 무슨 음식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며 찾는다.

 결국 손님들은 자기 이름을 내건 셰프를 믿고 무한 신뢰를 보낸다는 거다.

 윤세영 셰프는 지난해 8월 ‘스탠다드 키친’이란 이름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다 올 6월 ‘윤세영 식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윤 셰프는 “내 모든 걸 내보이는 셈이라 부담이 컸다”며 “하지만 내 이름을 내거니 그만큼 자신감이 생기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환을 찾은 김희수(49·평창동)씨는 “아무래도 가게에 주인 이름이 붙어 있으면 왠지 더 맛있고 재료도 좋을 것 같은 믿음이 간다”며 “또 내가 원래 알던 사람이 아니어도 유명한 사람이 하는 곳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트렌드 전문가들은 이런 유의 식당이 최근 많이 생기는 이유를 “높아진 셰프의 위상과 이른바 ‘돌직구’ 직설화법이 주목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트렌드 코리아 2014』의 공동 저자인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우리 사회는 물질을 소비하는 데서 경험하는 사회로 점차 넘어가고 있는데 음식이 그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 반열에 오를 만큼 셰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퍼진 상황에서 셰프들이 자기 이름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솔직하고 직설적인 마케팅을 하는 걸 대중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3) 장진우 식당(위), (4) 요리사손지영의 핫토리키친(아래).

셰프의 이름 내건 이태원·한남동 맛집 4곳

윤세영 식당의 새우 크림 페투치(아래)와 안심 크림 리조또 / 예환의 새우리조또

(1) 윤세영 식당

대표 메뉴: 햄버그 라이스(1만5500원), 새우크림 페투치(1만8500원)

특징: 윤세영 셰프가 세종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외 레스토랑에서 2년여 근무한 뒤 낸 식당. 처음엔 신선한 식재료를 정갈하고 표준화한 방식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 스탠다드 키친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꾸었던 자기 이름을 내건 식당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름을 바꾸었다. 이탈리안과 일식을 기본으로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더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대표 메뉴인 햄버그라이스는 미국 정크푸드에다 채소와 밥을 곁들여 건강한 한 끼 식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주소: 용산구 한남동 795-1
할인카드: 없음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3시, 오후 5~10시, 일요일은 오전 11시30분~오후 9시(월요일 휴무)
좌석 수: 22개(가게 앞 테라스 16개)
주차 여부: 주변 유료주차장(1시간 무료)
전화번호: 02-759-3375

(2) 예환

대표메뉴: 새우 리조또(2만원), 오징어 샐러드(1만7000원)

특징: 경리단길 거의 끝인 그랜드하얏트 호텔 근처에 있다. 오너 셰프인 배예환 셰프는 사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어 자기 이름을 간판으로 내걸었지만 처음엔 부끄러워서 아주 작게 간판을 써 붙였다고 한다. 지금 문 옆에 있는 큰 글씨는 단골 손님이 직접 써 준 것이라고. 2010년 현대백화점 본점에 그가 만든 소스브랜드 ‘예환드레싱델리’가 입점할 정도로 소스 맛있는 집으로도 유명하다. 일반 리조또와 달리 국물이 자작하게 있어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매콤한 새우리조또가 인기 메뉴다.

주소: 용산구 이태원2동 5-13
할인카드: 없음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3시, 오후 5~10시
(일요일 휴무)
좌석 수: 18개
주차 여부: 주변 유료주차장(1시간 무료)
전화번호: 02-798-4752

(3) 장진우 식당

대표 메뉴: 매일 메뉴가 달라져 꼽을 수 없음

특징: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곳. 포토그래퍼 장진우씨가 2010년 문을 열었다. 평소 요리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사무실로 쓰던 공간을 테이블 한 개뿐인 예약제 식당으로 꾸몄다. 단 사전 예약 손님이 없으면 누구나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메뉴는 주인 마음대로다. 그날 신선한 재료가 어떤 것인지, 또 주인이 뭘 만들고 싶은지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예약 여부와 그날의 메뉴는 전날 밤 11시 식당 페이스북에 공지한다. 가끔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 ‘미드나잇 장진우식당’도 페이스북을 통해 공지한다. 이곳은 간판이 없어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오면 헤매기 십상이다. 걸어서 10초 거리에 있는 많을 다(多)자와 공간 방(房)자를 합친 장진우 다방에서도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주소: 용산구 이태원2동 249-15번지 붉은나무 문
할인카드: 없음
영업시간: 오후 6~10시30분, 토요일 오후 1~10시30분, 일요일 오후 1~6시(월요일 휴무)
좌석수: 8개(최대 10명)
주차 여부: 가게 앞 주차 가능(4대)
전화번호: 070-8160-0872

(4) 요리사손지영의 핫토리키친

대표 메뉴: 사라다우동(2만원), 겨울메뉴 스지(소힘줄)나베(1만8000원)

특징: 일본 핫토리영양전문학교를 나온 손지영 셰프가 2008년부터 운영한 이자카야. 술 못 먹는 사람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술집을 만들고 싶어 제대로 된 요리를 내놓겠다고 결심했단다. 간판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기 최면이자 다짐. 일본식 선술집을 표방하지만 마네키네코(고양이 인형) 같은 일본 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장식은 없다. 일식뿐 아니라 한식과 양식의 장점을 더한 메뉴도 종종 선보인다. 5개의 기본 고정메뉴를 바탕으로 매일 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우동면을 차갑게 식힌 뒤 채소와 깨, 땅콩소스 등과 함께 버무려 먹는 사라다우동.

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662
할인카드: 없음
영업시간: 오후 7시~새벽 2시(일요일 휴무)
좌석수: 12개
주차 여부: 불가능
전화번호: 02-792-1975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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