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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딛고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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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는 4일∼7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새로운 태평양시대의 일본』을 주제로 한 일본문제 국제학술회의를 가졌다. 전후 군국주의의 희생이 되었던 「아시아」여러 나라의 불안정한 여건을 딛고 일어나 오늘날 국제사회에 「경제대국」으로 다시 등장한 일본을 진단한 이 학술회의에서 비교적 주목을 끌었던 3논문을 발췌, 다음에 소개한다.

<일본의 민족주의>전후 부흥 위한 심리적 수단으로 이용|재무장 문제로 「파시즘」이 대두할 수도|도널드·헬만<워싱턴대교수·정치학>
「내셔널리즘」은 근대 일본 사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일본은 다른 어떤 공업국들보다 의식적이고 능률적으로 민족주의를 성장시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그 결과 45년까지 팽창주의적이고 활동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했다.
패전과 이에 뒤따른 점령하의 개혁으로 전전의 정치·사회체제를 지배하던 「내셔널리즘」이라는 이상은 실추되고 이의 재활기회는 소멸되어 버렸다.
따라서 전후에 와서 일본 「내셔널리즘」의 부활론자들은 일본정치의 주변세력에 불과한 극단주의자나 낭만주의자에 지나지 않았고 이들의 호소력 또한 이념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일종의 비「내셔널리즘」적 시대를 겪어온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태가 계속되리라고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리즘」이 대두될 것이며 외교정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데 있다.
사람들은 종종 현 일본정치질서의 잿더미 속에서 「내셔널리즘」이 잉태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만약 현 체제가 경제적 실패를 맞거나 중대문제에 봉착하여 이를 감당해내지 못할 경우 1931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군국주의보다는 「유럽」「파시즘」과 유형을 같이하는 급진적 전제주의가 대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러한 외적 조건을 국내문제에서는 당장 찾을 수 없으며 3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사건으로서만 그러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나라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사회안정을 누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과격파 학생운동이나 삼도유기부의 자살 같은 극적 사건은 가장 가시적인 반체제활동이긴 했지만 역시 주류를 반영하는 사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온건한 형태로 있던 일본 「내셔널리즘」을 변질시킬 수 있는 국내세력을 촉발시킬 가장 큰 잠재력은 일본의 재무장 문제 속에 있다. 평화헌법으로 조성된 평화적 분위기와 일본방위력을 확장시켜야 하는 필요성 사이의 「갭」은 이미 엄청난 것이어서 재무장을 실시한다거나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과 같은 급작스런 결정을 내린다면 국론을 양극화시키고 우파와 좌파에서 다같이 강력한 정치세력을 대두시키게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정책전환은 미국이 갑작스레 전략적인 후퇴를 함으로써 일본의 안보문제에 대한 위협이 급속히 확대될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중공과 소련이 우려하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추세를 탄 군국주의의 대두는 국내사정보다는 국제정세에 따라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며 반미색채를 띠게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국제분위기와 일본이 맡은 국제사회의 역할로 보아 일본정부가 팽창주의자적 목적이나 지정학적 정책지향성을 위한 외교정책을 쉽사리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가 중립화하지 못하고 영구적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일본은 자국의 경제이익을 위한 외교수단으로서 반드시 군사력의 사용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일본외교의 주무대는 「아시아」이다.
근대화의 시초부터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와의 관계에서 이룩되어왔다.
이러한 특징은 외교정책으로 왜곡된 경제중점 정책에 따라 얼마간 일그러지기는 했으나 전후기간 죽 일관되어 왔다.
일본은 이렇게 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정치소용돌이에서 초연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우기 일본외교정책은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계속 국내적인 결정보다는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대외관계에 따라 규정될 것이다.
「아시아」지역의 본질적인 정치적 유동성과 이 지역에서의 분쟁을 강대국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없는 사정 및 45년이래 계속되어온 전쟁상태 등으로 해서 일본외교정책이 핵시대에 들어와 국제권력정치의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아시아」이다.

<일본과 국제관계>전후 대미 일변도 외교가 고립을 자초|「주변경시」사고로 아주국의 적대감 사|중근천지<동경대교수·사회학>
미·일 관계를 동요시키고 중·일 관계재개를 가져온 일본의 경제성장은 태평양지역의 새로운 국제관계를 가져오게 하고있다.
일본의 재등장이 이 지역의 많은 나라들에 적대와 의혹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희생이 되었던 동남아 나라들은 일본이 세계평화와 「아시아」지역원조를 위한 기여의도를 공언하지 않은데 대해 의혹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자신이 이 새로운 상황에 관해 준비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 일본은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가? 내 생각에는 그것은 국제문제처리에 약점을 노출한 일본정신을 키워온 일본전후 역사와 사회학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5년간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내적 충실을 기할 수 있었던 나라 중의 하나다. 2차대전 후 미·일 상호안보조약에 의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한 기간을 보냈던 것이다. 미국에 전적으로 보호됐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 세계정치에 있어서 아무 의미 있는 역할도 못했다. 외교도 미국과의 관계일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것이 일본으로 하여금 내적 질서와 경제성장에 집중하게 했다.
동시에 국제적 활동의 이면에서 일방적 외교를 추진케 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고립되어온 일본은 다시 급변하는 전후의 국제조류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일 기회를 잃게 했고 타국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동등한 관계의 협조나 상호관계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습관의 결여다. 일본의 사회적 관계는 언제나 「수직원리」라고 내가 부른 상과 하, 우와 열의 일방적 관계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것이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이 자기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 우위적 입장을 취하겠다고 할 때 문제가 있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종속국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를 원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일본의 사회체제에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특징이 있다.
중심을 중시하고 주변을 경시하는 일본인의 사회학적 인식태도는 가정·지방·교육·산업기관이나 정무에도 적용되고 있다.
중앙이 높고 주변은 낮다는 계급의식은 가정에서는 장자상속으로, 도시우위로 나타난다.
해외에 나가 공부하는 것조차 일본에선 제1급 인물에 속한 일이 아니다. 7세기이래 일본역사를 보면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고관이 없었으며 고관의 부하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유학생들의 향수 중엔 이 같은 중심에서의 소외가 기본적인 것을 알아야한다.
그 결과 외국문제나 국제문제를 취급하는 것이 주변인물의 일 같은 감을 갖게된 것이며 이것이 일본의 약점이 되고 있다. 능력자가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요소로서 작용하면서 외부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은 제1급 인물에게 빈약한 것이 된 것이다. 정치나 상무 면에서 일본이 국제문제취급에 능숙치 못한 이유의 하나는 이 때문이다. 이웃나라를 포함한 타국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에 일본은 최근의 국제상황에서 곤란을 겪고 아울러 유능한 인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일본의 전통적 사회가치기준을 깨뜨리기 위해선 일본인이 국제문제의 중대성을 정말로 느낄 때까지 외부로부터의 점진적 자극과 충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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