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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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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는 새들(조류)의 낙원이다. 7할이 넘는 산간에 기후도 온화하다. 열대도 한대도 아닌 그 중간에서 4계의 변화를 흐뭇하게 누린다. 겨울이 와도 대체로 3한4온의 「리듬」이 있으며, 봄과 가을의 쾌적한 날씨가 여간 상쾌하지 않다. 1년 강수량도 대부분이 여름에 집중된다. 따라서 일조시간·쾌청일수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탁월하다. 새들에겐 그럴 수 없이 만족한 환경이며 풍광이다.
한반도를 찾는 철새는 1백36종을 헤아린다. 이른봄이면 알락할미새·노랑할미새가 노고지리 속에서 율동 한다. 4월은 제비들이 추녀 밑으로 찾아와 깃을 펴는 달이다. 이 무렵 촉새의 발랄한 도약은 사뭇 소명의 탄력을 느끼게 한다. 신록이 눈부실 때쯤엔 꾀꼬리의 현란한 노랫소리가 숲 속에 바람을 잠재운다. 반짝이는 나무잎새에서 굴러 나오는 듯한 그 신비로운 음향은 실로 우리의 어두운 가슴을 신선한 감동으로 채워준다. 초여름의 뜸부기소리는 깊은 향수를 일깨워준다.
선들바람이 불면 봄철의 철새들은 이삿짐을 꾸린다. 남방으로 하나 둘씩 떠나버린다. 그러나 한반도의 하늘은 적막하지 않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북국의 여행자들이 대오를 지어서 행군해 온다. 기러기의 무리들이다. 두루미류·고니류들이 날아오는 것도 이 철이다. 먼 눈빛으로 강의 피안에선 백조의 무리들이 어느새 군무를 하고 있다. 푸르른 수평선에서 포말이 솟구치듯이 온갖 백조들이 날개를 친다. 바로 두루미나 고니류의 새들이다.
석양을 날아가는 사색가 같은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계절의 운치를 더한층 높여 준다.
자연은 이처럼 우리에겐 천혜의 존재이며 정서이다. 어느 날 문득 한반도의 산하에서 그들이 사라지고 말면 우리의 주변은 얼마나 침울하고 쓸쓸하겠는가.
봄이 되어도 나무에선 새 움이 트지 않고, 꽃이 피어도 신비로운 색깔이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찮은 새 한 마리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크다.
생의 즐거움은 물질적인 만족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 행복은 오히려 정신적인 충만감에서 그 빛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대립의 관계도, 도전의 관계도 아니다. 조화 속에서 서로 균형을 가질 때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또 향훈의 정서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의 하찮은 편린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낙동강의 겨울 철새들이 사냥꾼들의 총부리에 쫓겨 신음하고있다는 소식은 그지없이 우울하다.
새들의 비상도, 자연의 약동도 없는 산하는 정말 얼마나 황막한가. 방아쇠 속의 손가락이 떨리지 않는 그 무뢰한 사냥꾼들의 심장이 과연 따뜻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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