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의 체포>
『주인이시오?』
앉아있던 양복장이중 한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렇소.』
나는 어떨결에 대꾸하는 수밖에 없었다.
『종로서에서 왔소.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와 미안하오.』 그 사람의 이야기는 제법 인사성 있어 보였지만 안방 웃목에 있던 나의 책·편지·「노트」등이 마구 헤쳐져 방안 가득히 널려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벽장과 책장을 샅샅이 뒤져 이미 필요한 것은 한 묶음 보따리로 싸놓고 있었다.
『갑시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얄미울 만큼 침착해 있었다.
『어딜 가오?』
『가면 압니다.』나는 어처구니없이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형사 중 한 명은 종로서에서 왔고 한 명은 홍원에서 왔다고 했다.
홍원이란 이야기에 나는 직감적으로 정태진을 생각했다.
그러나 내용을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나는 가자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또 그 당시 일제의 폭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때에 안 간다고 버티어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이들에게 이끌려 다시 새벽길을 걸어 종로 네거리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경찰서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긴덴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끌려간데가 경찰서라는 것을 알았다. 우중충한 건물로 들어가니 내가 입고있던 여름양복의 옷깃을 마구 잡아 메고 허리띠를 빼낸 다음 호주머니를 뒤져 몽땅 꺼내놓고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등어리를 밀어 처박아 넣었다.
유치장에는 수십 명이 들어앉아 있었다.
『어떻게 들어 왔소?』
어리벙벙해서 있는 나에게 한사람이 물었다.
『나도 모르겠소.』
『이곳에 들어오면 규칙을 지켜야하니 바로 저기 가서 앉으시오.』
나는 초입자가 되어 똥통 옆에 앉았다.
조금 있다 아침밥이 들어왔다. 나는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도루 놓았더니 이쪽 저쪽에서 빼앗아 가려고 법석을 떨었다.
처음 나에게 묻던 자가 소리를 쳐 내 밥을 빼앗아 아무개 아무개를 지정, 나누어 먹도록 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굶었다.
그 동안 나는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왜 붙잡혀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형사들도 왜 끌려가는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귀띔해 주지 않았다.
유치장 속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 나만 끌려 온 것이 더욱 이상했다.
하루 종일 꼼짝 못하고 그날 밤을 그대로 지샜다.
다음날이 밝아도 나를 찾는 일은 한번도 없다.
그러니까 유치장에 갇힌지 이튿날, 바로 10월2일 땅거미가 지고 날이 또 저물어 저녁 밥 그릇이 깨끗이 비워져 나가고 나서도 한참 후에 간수가 와서 나를 불렀다.
나는 널찍한 대합실 같은데로 끌려나갔다.
전등이 밝혀진 그 방에 들어서니 낯익은 동지들의 모습이 무더기로 보였다.
손을 뒤로 묶여 앉혀 있었다.
이중화·장지영·이극로·최현배·한징·이윤재·이희승·김윤경·권승욱·이석린의 얼굴이 차례로 보였다.
이들의 표정도 한결같이 어리둥절. 무슨 큰 죄를 졌다고 욕을 보겠는가고 태연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러 동지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무리 속에 끼였다.
우리들은 양과 같이 손이 묶인 채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지 못했다.
일체 이야기를 못하도록 사복형사들의 눈이 감시를 하고있었다.
글자 그대로 묵묵 상고.
우리일행 11명은 11명의 형사에게 끌려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 있었다. 종로 네거리로 나와 일행은 전차 정거장 대기대에 늘어섰다.
한 명에 꼭 한 명씩 사복형사가 사이사이에 끼여 나란히 전차를 기다렸다. 그때가 밤 9시쯤 되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전차를 타고 우리는 남대문 정거장에서 내렸다. 우리는 경성역 「플랫폼」으로 끌려 들어갔다.
기차가 왔다. 함흥행 열차였다. 어떻게 역구내 「플랫폼」 층계를 내리고 기차에 올라탔는지도 모르게 기차를 탄 셈이다. 동지 한사람 옆에는 꼭 사복형사가 붙어 앉아 우리는 기차 속에서도 한마디의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가 없었다.
무슨 죄를 졌다고 어디로 끌려가는 것인가 혼자 속으로 애탈 뿐이었다. <계속>계속>동지들의>
(617)<제29화>조선어 학회사건(2)|정인승<제자 정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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