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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肅淸[숙청]

중앙일보

입력

국보 1호인 숭례문(崇禮門)의 부실 복원이 심각한 수준이다. 숭례문은 서울의 남대문이고, 북대문은 북악산 동쪽의 숙청문(肅淸門)이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5년(1396) 9월 24일 조에는 한양의 성문 축성 기록이 자세하게 나온다. 조선은 유교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본떠 사대문의 이름을 흥인(興仁), 돈의(敦義), 숭례, 숙청으로 지었다. 신(信)은 보신각(普信閣)에 붙였다. 북문만 예외다. 지금의 ‘홍지문(弘智門)’은 숙종 때 뒤늦게 세웠다. 백성들이 지혜로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란 설이 전한다.

숙청문에는 사연이 많다. 풍수 전문가 최양선(崔揚善)은 북악산 좌우는 경복궁의 양팔이므로 문을 내어선 안 된다며 창의문(彰義門:지금의 자하문·紫霞門)과 숙청문을 폐쇄시켰다. 왕실은 가뭄이 심할 때에만 닫혔던 숙청문을 열고 숭례문은 닫았다. 북은 음(陰)이고 남은 양(陽)인 까닭이다. 양을 막고 음을 열어 기우(祈雨)하는 음양사상의 발로였다. 숙청문을 열면 장안의 여자들이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도 전한다. 숙청문은 조선 중기 이후 숙정문(肅靖門)으로 바꿔 불렸다. 1976년 서울 성곽을 복원하면서 숙정문을 재건하고 편액을 걸었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습격한 1·21 사태 이후 접근이 금지됐던 숙정문은 2006년 일반에 개방됐다. 숙정문 개방 이후 여성 정치인이 세를 키운 것과 관련이 있을까.

숙청문의 숙(肅)은 연못 위에 붓을 잡은 손(聿在淵上)의 모습이다. 얇은 얼음 위를 걷는 듯(如履薄氷·여리박빙)하고 전전긍긍(戰戰兢兢)하다는 뜻이다. 숙청(肅淸)은 뜻이 여럿이다. 나라가 안정되고 기강이 바로잡힘을 이른다. 정적(政敵)이나 도적을 완전히 소탕한다는 뜻도 있다. 정돈한다는 의미와 날씨가 쾌청하고 서늘함을 형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숙청은 뉘앙스가 강하다. 공산국가에서 권력 투쟁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이유다.

북한의 2인자 장성택의 숙청설·실각설이 나왔다. 공교롭게 5년 전 이맘때에는 김정일 뇌졸중설이 나왔다. 설은 설을 낳았다. 북한 급변사태설에 취해 남북관계는 5년 내내 정체됐다. 이번엔 다른 대처법이 필요하다. 정확한 정보와 긴 호흡의 대북정책이 긴요하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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