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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 치료 분야 ‘표준’을 정하는 의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와 건강포털 코메디닷컴이 선정하는 ‘베스트 닥터’의 갑상선 질환 진료 분야에서는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의 송영기(55) 교수가 선정됐다. 이는 중앙SUNDAY와 코메디닷컴이 전국 10개 대학병원의 내과 및 외과 교수 41명에게 “가족이 아프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기본으로 하되 코메디닷컴 홈페이지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한 점수와 환자들이 평가한 체험점수를 보태서 집계한 결과다. 송 교수가 자신의 책상 위에 사진을 붙여놓을 만큼 존경하는 스승 조보연 중앙대병원 교수가 두 번째로 많은 추천을 받아 ‘청출어람’의 본보기가 됐다.

캐리커처=미디어카툰 정태권

남자가 사춘기를 지나면 목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다. 영어로 ‘아담의 사과(Adam’s Apple)’, 우리말로는 갑상연골이다. 튀어나오지 않았을 뿐 여자에게도 있다. 갑상연골 아래에 인체 대사과정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갑상선(甲狀腺)이 있다. 갑상선은 방패 모양의 샘이라는 뜻이다. 해부해보면 방패나 나비 모양으로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여기 생기는 암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손으로 혹이 만져져야 수술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송영기(55) 교수는 2004년 손으로 혹이 만져지지 않아도 수술이 필요할 만큼 암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입증해 영국내분비학회의 학술지 ‘임상내분비학’에 발표했다. 크기만 갖고 섣불리 수술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되며 초음파 검사 등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그의 연구 결과에 국제학계는 주목했다. 결국 교과서까지 바뀌었다.

그러자 몇 년 동안 의료계에서 수술이 남발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초음파 검사에서 미세한 흔적만 발견돼도 온갖 검사를 하고 갑상샘암 진단을 내려 수술하는 건수가 급증한 것이다.

송 교수는 대한갑상선학회 이사장이던 2010년 이 관행에 선을 그었다. ‘크기 5㎜ 이하의 결절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별도의 추가 검사와 진단을 하지 말도록 권고한 것이다. 일부 의사들이 반발하고 심지어는 협박까지 했지만, 송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송 교수는 이처럼 갑상선 질환 분야에서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즉 ‘표준’을 정하는 의사다. 그의 권위는 뛰어난 연구 실적에서 나온다. 서울대병원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230여 편의 논문을 썼으며 100여 편이 국제 권위지에 등재됐다. 이 가운데 6편은 2009년 미국갑상선학회에서 발간하는 ‘갑상선암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인용됐다.

그는 미국갑상선학회에서 발간하는 ‘갑상선’, 유럽갑상선학회에서 펴내는 ‘유럽갑상선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송 교수는 또 2010년부터 아시아·태평양갑상선학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태평양 갑상선학회’에서 갑상선 질환 분야의 최고 의사에게 주는 ‘나가타키 후지필름 상’을 받았다.

송 교수는 “고교 때 경제학자가 되고 싶어서 문과에 지원했지만 의사가 되기를 원한 아버지 때문에 할 수 없이 이과로 옮겨 의대에 진학했다. 의사가 된 뒤에는 고무 알레르기 때문에 수술 장갑을 낄 수 없어 내과로 방향을 잡았다. 세 분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의사로 머물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스승은 우리나라 병리학의 체계를 세우면서 의학 발전을 이끌어온 지제근 서울대 명예교수다. 송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지 교수에게 개인 수업을 받으며 연구하고 논문 쓰는 법을 배웠다.

두 번째 스승은 서울대병원 전공의 때 스승이었던 조보연 현 중앙대 교수다. 조 교수로부터는 생각하고 실험하는 방법, 추리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배웠다. 송 교수의 책상 위에는 조 교수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난관에 부딪치면 사진을 보면서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매듭을 풀까’ 하고 생각에 잠긴다.

세 번째 스승은 독일 베를린 자유대의 홀스터 슐로이제너 박사. 송 교수는 1992년 그의 논문을 보고 ‘한 수 가르침’을 요청했고, 스승은 훔볼트 장학금을 알선해서 제자를 초청했다. 학문뿐 아니라 생활도 챙겼다. 성탄절엔 95세 부친을 비롯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 송 교수를 초청했다. 송 교수는 ‘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나를 이렇게 아끼느냐’고 물었다. 푸른 눈의 스승은 “내가 1950년대 캐나다에서 유학할 때 스승인 맥스웰 매킨지 교수가 나를 아들처럼 챙겨주며 ‘나중에 외국 제자에게 내가 하듯이 대하라’고 가르쳐줬다”고 전했다.

송 교수는 대를 이은 사제의 가르침을 통해 “국경을 넘어 의사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가 2011년 인도·대만·싱가포르·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전문의 15명을 초청해 갑상선에 관해 가르치는 ‘아시아 전문가 양성 코너’를 개설한 것도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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