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조절 위 1차 회의 무엇이 얘기됐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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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조절위원장회의는 4시간이 넘는 긴 회담이었으나 공동발표문은 간략했다.
남-북 적 서울회담이 있은 후 이번 판문점회담까지의 한달 사이에 남북관계와 관련된 사정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북쪽의 대남 비방강화이며,「유엔」과 IPU에서의 북한좌절, 일-중공수교, 이후락 부장의 대 언론 공한, 조총련 내분 등도 들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한 조절위원장회의는 무엇을 논의했고 양측의 견해는 어떠했을까.
이후락 위원장은 회담을 마친 뒤『오늘 회담은 남-북 조절위원회구성문제 및 상호비방문제를 포함해서 7·4성명내용 전반에 관해 협의했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 회의를 10월말에 다시 열기로 했고 평양 측 김덕현이『남-북 조절 위는 앞으로 협의하여 구성 운영키로 합의했다』고 한 점으로 미루어 조절 위가 7·4성명에 적시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충분한 토의는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조절 위 구성은 7·4성명의 합의를 달성키 위한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절 위의 구성원칙은 앞으로의 남-북 접촉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과 견해가 쉽사리 접근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우리측에서는 실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자는 선에서 일단은 남-북 적십자회담을 뒷받침하는 기구로 발족시키자는 입장일 것이며, 평양 측에서는 정당·사회단체 내지 정부「레벨」의 사람이 참여하여 막 바로 통일문제를 다루는 정치적 기구로 발족시킬 것을 제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남-북 대화의 저해요인으로 꼽히는 상호비방중지문제에 대해서 이를 개선해 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이 분명하다. 7·4성명의 정신을 재확인했다는 발표나, 이 위원장이 『오는 10월24일로 예정된 제3차 남-북 적십자회담이 연기될 이유가 없다』고 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9월13일 제2차 적십자회담 후 북한은 7·4성명이 전과 마찬가지로 대남 비방공세를 취했고 특히 남한의 언론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로 인해 남-북 관계는 7·4성명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고 자칫하면 10월24일로 예정된 제3차 적십자회담도 연기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마저 나돈 것이 사실이다.
이 위원장도 지적했듯이 비방을 서로 먼저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념과 체제의 차이 때문에 비방의 원인과 한계규정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면서 단절27년에 달라진 서로의 모습에 놀라고 당혹 감까지 느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의 눈으로 보면 윤기복의 조선「호텔」연설을 비판한 우리측 보도가「비방」으로 비칠 수도 있고「유엔」과 IPU에서 북한가입을 배격한 것도 외부세계에서의 비방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자유의 집」회담에서는「비방」문제에 대한 충분한 의견교환이 있었고 7·4성명이후 서울회담 때까지의 전례로 보아 상호비방을 자제하자는 원칙에는 합의가 된 것 같다.
적어도 10·24평양회담을 전후하여 비방 계속여부에 대한 상호「체크」를 토대로 10월 하순에 열릴 제2차 조절 위 공동위원장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키로 양해가 이루어졌음직하다.
어쨌든 이날 회담은 다음회의를 10월 하순에 열기로 합의함으로써 정식구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조절 위의 활동을 사실상 괘도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경화되었던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 쌍방이 노력한 흔적이 있는 것만으로도 남-북 고위당국자간의 공식대화의 수확은 컸다고 할 수 있다. <이억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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