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언론인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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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23일 새벽, 그 나라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라디오」 및 TV방송국과 신문사를 폐쇄시키고 수많은 언론인을 구금했다. 그러나 3일 후부터는 친정부계 신문의 발간은 허가 하고있으며 외신보도만은 허용하는 등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IPI는 이 사태에 직면하여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언론인의 석방을 요구하고 언론에 대한 통제를 해제하도록 촉구했다.
어느 나라 정부를 물론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신문보도나 평론을 좋아할 자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선진국에서는 이들 언론기관의 비판을 받아들여 비정을 시정하는데 성의를 보이는데 대하여 후진국에서는 이를 덮어놓고 탄압하려는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이지 언론의 사실보도와 정곡을 찌른 비판은 후진국정부로 하여금 정권유지에 큰 위협을 느낄 만큼 뼈아픈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후진국가들의 정부가 흔히 부정과 부패에 젖어 있기 때문이요, 이러한 부정과 부패가 폭로되면 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현재의 선진국가들도 초기에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었기 때문에 언론기관이 당연히 부정 부패를 폭로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고 정부와 대결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하면 그들은 이러한 언론기관의 비판에 순응했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요, 그 반대로 후진국은 언론의 비판에 순응하지 않고 탄압만 일삼았기 때문에 후진국으로 남아있는 것이라 해도 크게 잘못은 아니다.
「필리핀」은 「스페인」 점령으로 서구화의 길을 걷다가 미국의 영지로 바뀌어 민주화의 길을 걸었으나 일본의 점령 후 패전으로 말미암은 독립 후에도 순탄한 민주화에의 길을 걷지 못하고 일부 특권인의 부정부패로만 치닫고 있는 감이 없지 않아 벌써부터 민주우방들에 큰 서글픔을 안겨준 나라이다.
오늘날 「필리핀」의 내공과 경제는 국내외정세의 큰 시련에 부딪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필리핀」의 사태가 공정한 인사의 눈으로 볼 때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정치인과 언론인들을 탄압해야 할만큼 심각한 것이었다고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코스」대통령이 실시하고 있는 전국적 농지개혁의 실시라든지 치안확보, 또는 빈부격차를 위한 양극화의 해소 등은 「필리핀」의 언론에서도 적극적으로 찬성할 바로 그러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국가에서 헌법을 유린하고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기도나 국민의 동의 없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등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언론기관이 이를 묵과할 수 없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론의 자유는 여론형성의 자유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며 여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정치의 존재요건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정치이론의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에 이를 여기서 재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정치의 발상지인 「아테네」에 있어서나 「터키」의 「앙카라」나 「필리핀」 등 민주정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조차 언론의 자유가 이처럼 제한되고 있는 사실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민주정치와 독재정치의 본질적인 차이는 여론형성의 자유를 인정하느냐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국논조작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필리핀」 「마르코스」대통령도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를리 없을 것인즉 이제부터라도 구금된 언론인을 석방하고 민주정치의 부활에 노력하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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