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의 사후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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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8·3조치후의 금융대책으로서 신용대출확대를 위시해서, 여신에 있어서의 기업평가기준통일, 대출금 사후관리현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그러한 일련의 조치가 실제 금융면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며 어떤 문제 거리를 파생시킬 것인지 매우 주목되는 바라하겠다.
그동안 이 나라 금융은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 이를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금융개선이라는 대과업이 지금의 금융풍토하에서 단시일 안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때문에 금융현상을 무시한 이상론이 얼마만큼이나 먹혀들어 갈 수 있으며 현실에 맞지 않는 이상론을 강요할 때 그것이 역설적으로 금융을 교란시키지 않을 것인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당국자는 그들이 금융행위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규제하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이며, 또 현명한 것이냐 하는 기본문제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솔직이 말하여 금융실정을 도외시하고 내려지는 당국의 지시가 결과적으로 금융개선에 기여하지 못할 때 그 책임은 정부가 져야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겠는데 앞으로의 금융문제에 대해 정부가 금적으로 책임을 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정부가 금융문제에 금적으로 책임지는 사태를 전제로 하여 세부적인 금융규제를 한다는 것도 금융의 중립성 보장을 생명으로 하는 자본제 경제정책의 본질을 도외시하는 것이 될 우려가 짙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물론이다.
다음으로 기업체에 대한 종합평가기준을 정부가 금융기관에 시달하는 문제는 역설적으로 금융당사자를 무책임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는 지적하고자 한다. 솔직이 말하여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만 맞으면 무조건 여신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금융당사자들이 갖게될 공산이 크다 하겠는데 이 경우 대출은 오히려 부실화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서 정부가 시달한 평가기준은 대출상환전망에 불과 10점을 배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상환전망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해도 좋다는 지시나 다름 없게될 것이다.
또 정부는 기대출 거래에 대한 신용조사를 해서 이를 기준으로 신용을 판단해서 대출을 하라고 했는데 그 이상은 좋지만 금융계가 이를 소화할 능력이 없음을 당국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금융계능력을 가지고서는 여신을 간단할 수 있을 만큼 충실한 신용조사를 하려면 기대출 거래선에 대한 조사만 하더라도 수년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우기 적어도 6개월마다 기조사 거래처를 재조하지 않고서는 신용상태의 변화를 추적할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 우리 금융계가 보유하고 있는 극소수의 조사인원을 가지고 정부지시를 소화시킬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따라서 금융계의 소화능력을 무시하고 담보위주 여신을 탈지하라고 하는 것은 금융부실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아니 되겠다.
끝으로 대출금사후관리의 강화조치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금융부실화를 막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요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대출금을 관리 예금구좌에 넣고 기성고나 또는 분명한 지급요인을 확인하여 지급하는 제도는 이미 산업은행이 과거부터 실행해온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를 시행해온 산업은행 여신이 평균적으로 보아 결코 일반금융기관여신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는 실속으로 보아 이 제도가 시행됐다 해서 금융부실화가 근절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융부실화를 막고 금융효율을 제고시기는 요체는 오히려 금융인들이 얼마만큼 성실하게, 그리고 또 얼마만큼 자율적으로 금융적 척도에 따라서 여신을 할 수 있겠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다른 안목과 능력을 갖춘 성실한 금융인으로 하여금 금융을 담당토록 하는 인적쇄신작업이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절실하며, 정책주국이 해야할 일은 인적쇄신과 쇄신된 금융당사자들이 아무런 구애 없이 소신대로 여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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