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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초가 속의「우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시아」인 축출선언으로 눈길을 모았던「우간다」가 이번엔 전화에 휩쓸렸다.
「탄자니아」쪽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1천여 명의「침략군」이 17일부터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우간다」의「아민」대통령은 이들이 영국 및「이스라엘」의 원조를 받은「탄자니아」군이라고 비난했다. 불과 1천여 명의「침략군」에 대해 3개국이 개입했다고 주장한 점이 바로 이번 사태의 열쇠가 된다.
「아민」이「탄자니아」를 정면으로 비난한 것은 자신이 축출한「오보테」전 대통령이 그곳에 망명해 있기 때문. 71년1월 영연방회의참석 차「싱가포르」갔다가 당시 참모총장이던 아민에게 쫓겨난「오보테」는 국경을 맞대고있는「탄자니아」로 망명, 권토중래를 기약해왔다.
「탄자니아」의「니에레레」대통령은 이른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오보테」와 보조를 맞춰왔으므로 그의 재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우간다」에서 오보테를 찾아 넘어온 5천여 명의 옛 부하들 가운데 1천여 명을 무장시켜줬고 지난해 10월에는 전면전일보직전까지 충돌을「에스컬레이트」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에 월경한 1천명의「침략군」은「탄자니아」가 준 무기로 훈련을 받아왔던「오보테」휘하의「인민군」일 것으로 분석되고있다.「탄자니아」측이 이번 전쟁을 『「우간다」의 내전』으로 딱지 붙인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인 듯하다.
「아민」이 영국을 침략배후세력으로 몰아세운 것은「아시아」인 축출소동과 함수관계를 갖는다. 「아민」의 추방정책이 끝내 실현될 경우 영국은 30만 정도의 비 백인 영국시민을 받아들여야 하므로 『차라리 「아민」을 몰아내는 것이 경제적』 이란 소리는 진작부터 있었던 터이다.
다시 말해서 약 5천명 정도로 추산되는 엉성한 군대를 깨뜨린 뒤 「오보테」를 앉힌다면 수십만의 달갑잖은 이민을 안 받아들일 수 있쟎느냐는 계산이다.
한데 영국이나 탄자니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민」이「이스라엘」을 배후세력으로 지목한 것은 하나의「아이러니」이다. 왜냐하면「아민」이「오보테」축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이 현지「이스라엘」대사관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아민」은 집권 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적 정치풍토와「아랍」권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이스라엘」을 따돌렸고 지난 1월에는 군사고문단마저 축출했다. 따라서「이스라엘」이 침략자의 배후세력으로 낙인찍힌 것은 이를테면 뿌린 씨를 거둔 격이라 할 수 있다.
관계전문가들은「아민」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앉지만 침략군의 배후에 영국이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의심하지 앉는다. 그리고 그 원인이 제국주의시대의 슬픈 유산이라 할 『「아프리카」의「아시아」인』에 있다고 단언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과거의 식민지소유국가들이 자신이 물어야할 벌금을 남에게 뒤집어 쒸우려는데서 싹텄다 할 것이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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