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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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의외로 북적 대표단의 서울 「쇼핑」은 취소되고 말았다. 인지상정 같아서는 시장에 들러 부인용 선물도 하나 사고, 백화점에선 아이들의 장난감도 한 두점 살 만하다. 이건 뭐 그야말로 어느 쪽의 상품이 좋고 나쁘고 하는 「정치적」 의미를 떠나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4박5일의 여행 중에 사사로운 선물하나 없는 것은 서운한 일이다.
서울 발 15일자 외신에 따르면 「쇼핑·스케줄」은 『보안상 이유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15일 아침 북적 대표들이 서울 지하철 공사장을 둘러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예정은 살아 있었다. 바로 그날 아침 이들이 지하철 현장을 보고 있는 동안 수명의 시민들이 감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그 외신은 시민들이 노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은 결국 자업자득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이른바 「정치 선전」의 연설만 삼갔던들 시민의 호의는 시종 한결 같았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입경 하는 날 시민 대부분의 심정은 호기심 절반, 호의 절반쯤이었던 것 같다.
시민 감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문제의 「정치식상」만이 아니다. 연도에서 손을 흔든 시민의 표정을 『북한에의 동경』으로 판단 (?) 하는 그 관점의 차이에도 있다. 좀더 정직하게 말하면 이젠 양측에서 그런 유치한 감정에 연연할 시대는 지났다. 어느 쪽이나 그 사회엔 만족과 불만족이 적당히 교차하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선이다. 따라서 「동경」따위로 비약하는 것은 「정치적 감각」치곤 너무도 비이성적이다.
16일자 서울 발의 또 다른 외신도 흥미 있다. 이 외신은 북적 대표단의 집요한 「정치」연설이 『대한민국 건국이래 가장 효과적인 반공 교육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런 국민감정을 뒤늦게나마 의식 (?)하고 북적 대표단의 말씨가 누그러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것도 역시 무슨 승부의 감정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를테면 양측의 대화는 그처럼 「긍정적인 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행정적인 강요보다는 긍정적인 이해야말로 성의 있는 대화의 실마리이다.
「평양∼서울」의 왕복 회담은 대체로 양쪽의 환상과 호기심을 서로 씻어버리는데에 보다 큰 의미가 있다. 그만큼 감정의 지배에서 풀려난 셈이다. 이 다음의 왕복은 또 한 겹 그런 환상과 쓸데없는 호기심을 덜어줄 것이다.
이제 좀 서운한 것은 북적 대표단이 쇼핑이라도 하며 장난감 곰 (웅)도 하나 사고, 과자도 한 봉지 사는 흐뭇한 정경이 벌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순수한 인간의 「드라머」이다. 이쪽도, 또한 저쪽도 마음의 부담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 흐뭇한 인간 「드라머」를 기대하며, 10월과 11월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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