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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특파원이 본 남북적 서울 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울에 온 외국 특파원의 눈에 비친 남북 회담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서울엔 현재 2백여명의 외국 특파원들이 와 있다. 그들은 한적 대표들이 평양에 갔을 때의 냉랭한 시민의 표정과 12일 낮의 서울의 따스하고 자연스런 환영 속에서 서로 노력하는 「귀중한 무엇」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토머스·페퍼」씨>
(미 「볼티모·선」지 동경지 국장)=12일 낮 통일로를 따라 「타워·호텔」에 이르는 길목의 인파를 보고 나도 모르게 무아의 경지에 빠졌다. 시민들의 자연 발생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이 참 멋있었다.
서울의 새벽거리가 깨끗이 청소되어 산뜻한 것도 귀한 손님을 맞는 기분을 돋구었다. 내 기사의 첫 「리드」는 단연 연도의 시민 표정이었다. 나는 수십만에 가까운 인파로 추산하고 싶다. 판문점에서 「자유의 집」으로 첫발을 디뎌 옮기는 북의 사람들이 자유의 훈풍을 맞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긴장과 대결의 분위기가 스르르 녹고, 가령 통금도 없어지고 국방의 힘겨운 부담도 줄어지는 평화 「무드」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북에서 정치 선전을 늘어놓더라도. 강자가 아량을 베푸는 것이므로 너무 염려 할 것 없이 그들을 설득해 나간다면 남북적 행렬이 스치는 세종로는 평화로란 별명이 붙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토머스·로스」씨>
(서독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지 극동 특파원)=경회루 「파티」는 환상적이다. 북의 사람이 27년만에 서울의 고궁에서 만났고, 불과 2주전에 평양 대동강에 갔다 온 인사들과 다시 만나고 30여년만에 동창생과 얼싸안고 아악과 「왈츠」가 번갈아 연주되는 연못 위의 이 잔치가 어찌 환상적이 아니겠는가. 이곳에 와서 새삼 느낀 것은 민족 감정이 「이데올로기」에 앞선다는 생각이다.
동포애가 첫째고 그 다음이 공산주의란 생각 말이다. 동독은 공산주의의 질로 보아 세계 4위쯤 가는데도 대화를 트기가 힘겨웠는데 옹고집으로 1급 공산 국가인 북한과 이처럼 대화를 열어 DMZ를 넘게된 것은 「임진강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리처드·핼로런」씨>
(미 「뉴요크·타임스」지 동경지 국장)=경회루 「파티」는 퍽 인상적이다. 내가 듣기로는 평양의 대동 문화 회관에서의 평양 초야의 「파티」가 3백50명 가량이 참석한 거창한 것이었는데 경회루 것은 7백명이 넘는 것으로 본다. 쌍방이 첫날 밤 「파티」를 크게 벌여 「무드」를 조성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평양 시민들의 통제 속에서의 냉랭했던 분위기와 서울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큰 대조를 이뤘던 것도 흥미롭다. 성급함이 없이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만 남북 문제 해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돈·오버도퍼」씨>
(미 「워싱턴·포스트」 동경지 국장)=53년 휴전 직전 이 나라에 와서 직접 싸웠던 나에겐 그 당시와 비교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줄 알지만 그 때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그 후 나는 월남 특파원을 하면서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목격했는데 월남도 역사를 단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으로 안다.

<▲「다메다·에이찌로」씨>
(일 조일 신문 외보부 기자)=외국에 많이 다녀봤지만 경회루 「파티」처럼 큰 규모는 처음 봤다.
「스테이트·게스트」 (국빈)를 맞는 연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엄하고 짜임새 있는 분위기에서 두 갈래가 된 한 민족의 소망을 알아볼 수 있었다. 회담의 성공을 빌고 싶다.

<▲「게르하르트·힐셔」씨>
(남독일 신문 극동 특파원)=한국의 패기 있는 활력과 민주 시민의 여유 있는 몸짓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서울 회담은 큰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북의 짙은 정치 색 가미로 흩어진 가족을 만나게 하는데는 앞으로 난관이 많을 것이다. 재결합 과정에서 강한 민족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나 문화교류가 더 쉬운 문제인지 모른다.

<▲「데일·D·모시」씨>
(UPI 통신 동경지 국장)=남북적 회담이 성공을 거두려면 정치성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번 「유엔」 총회에서 한국 문제를 상정시키지 말아야 한다.
현 단계로는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진지한 회담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통일 문제가 성급하면 할 수록 이를 피하고 우선 이산 가족 문제 해결을 성공시킨 뒤 남북 조절 위를 활용하여 단계적으로 통로를 확대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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