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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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8세기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대왕은 계몽사상에 매우 심취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가지 이른바 「과학적 실험」을 즐겼다. 그 중에서도 독창적(?)이었던 것은 태아가 모체에서 나오자마자 그 갓난아이를 완전히 사람들로부터 격추시켜보려고 한 일이다. 몇 년인가 지난 다음에 그 아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이냐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이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린이는 말을 하기 전에 죽어 버렸다, 그러나 그 아이의 죽음이 비인간적인 환경의 탓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이보다 앞서, 6세기초에는 또 「스페인」의 왕이 색다른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곧 「카리브」해의 섬「인디오」인들이 자유의사를 가지고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시험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정수의 「인디오」인을 해방시켜서 그들에게 토지와 곡물을 주면서 자주적으로 살아가도록 했다. 그것은 신대륙의 원주민이 인간이냐, 동물이냐의 의문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인디오」인들은 그럭저럭 살아가기는 했다. 그러나 실험을 한 「스페인」 인들에게 만족할만한 것은 되지 못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사람들은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는 「마젤란」에게도 있다. 「아메리카」대륙에 들른 그는 「아메리카·인디언」 한 소년을 배에 태우고 태평양을 건넜다.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해온 어린이에게 문명의 세제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모든 게 만족스럽게 진행돼 갔다. 그러나 교육이 막 끝날 무렵에 가서 그 소년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무리 어둡고 뒤진 환경이라도 오랫동안 그 속에 젖어있으면 그런 환경을 벗어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 이의의 모든 환경이나 조건이 오히려 역겹고 두렵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런 환경이 정말로 나쁜 것이라면, 그런 환경에서 자족하는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에 가장 큰 탈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처음으로 보도된 북한소식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로 깊은 감회를 안겨 주었다. 그 승에서도 놀라왔던 것은 이른바 「혁명엄마」의 얘기였다.
평양의 한 탁아소를 방문한 남한적십자대표가 어린이를 안으려 하자 안기지 앉으려고 발버둥쳤다. 그 어린이가 남한대표의 『나도 혁명엄마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의 품에 안겼다는 얘기는 우리를 서글프고 섬뜩하게 만들어준다.
벽에는『우리는 행복해요』라 적혀있고, 노래마다 『수령님』 찬양의 후렴이 붙어있는 그런 속에서 자라기 시작한 이들 세대가 북한에선 이미 어른이 되었다. 끔찍한 얘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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