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놀이터 그대로 보존 유람선선 소년단의 합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만경대>
한적 대표단 일행은 상오 10시 숙소를 떠나 20분 뒤 만경대에 도착했다. 일행은 평양시내를 빠져 나와 남포(옛 진남포)로 뻗은 외곽 길을 달렸으며 길은 2차선으로 좁았다.
만경대까지는「콘크리트」포장이었다. 길 양쪽은「플라타너스」가 즐비했고 낙엽이 조금씩 지고 있었다.
만경대어귀에는 안내판이 서 있었고 마침 안내판 앞에서 설명문을 들여다 보던 평양시민 20∼30명이 우리일행을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어귀에서 김일성 생가와 그곳에서 꼭대기의 정자까지 이르는 길은 모두「콘크리트」로 닦아져 있었다.
만경대 일대는 소나무와 사철나무 등이 울창했다.
김일성 생가는 집이 2채였다. 본 채가 있고 맞은편에 별채가 있었다. 지붕은 초가였다. 본 채는 방마다 김일성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일본경찰에 죽었다는 아버지의 삼촌, 친동생 4촌 동생 등의 사진 등이 걸려있었다.
김일성이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김일성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해방 뒤까지 이 집에서 살았으며 전시되어 있는 것들은 그 유품이라는 설명이었다.
별채에는 김의 할머니가 썼다는 베틀, 할아버지가 썼다는 농기구·항아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자 20m아래에 학습 터가 있고 잔디가 깔려 있었다. 학습 터는 김일성이 어렸을 때 이곳에서 대동강을 바라보며 공부를 한곳이라는 설명만이 있었다.
만경대아래 강을 마침 소년단원같이「머플러」를 한 20여명의 소년들이 동력유람선을 타고 합창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유람선은 봉화리에서 평양∼만경대∼강성∼남포를 왕래하는 배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