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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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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한적십자 대표단의 평양에서의 하룻밤이 지났다. 그동안 축배와 담소와 꽃다발이 오갔다. 공식으로는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는 서울에 전화를 했다. 『여기는 평양』이라는 말 다음부터 우리 귀엔 낯선 한국말들이 간간 섞여 나온다. 초대소 「트랙터·버스」「종합편의」(서비스 센터).
우리 기자들은 전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흥분을 가라앉힐 줄 몰랐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었다 해도 역시 같은 언어, 같은 전통, 같은 풍토에서 자란 겨레이다.
서로가 조금도 어색함이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바로 그 사실 자체에 우리네의 비극이 도사려 앉아있는 것도 같다.
2차 대전 때 영국에 주둔한 미군병사와 영국인 사이에 말썽이 자주 일어났다. 이것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미묘한 마찰과 오해에서가 아닌가 하고 유명한 인류학자 「마거리트·미드」여사는 지적한 일이 있다.
가령, compromise(타협) 라는 말이 있다. 영국에서는 이 말이 쌍방이 서로 접근해서 어느 타협점에 이른다는 긍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콤프러마이즈」란 자기 주장의 절반을 양보한다는 부정적인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 오해와 마찰이 생긴 것이다. 오히려 언어가 다를 때에는 「커뮤니케이션」때 서로가 자동적인 경계를 하기 때문에 오해는 적어진다.
1945년 8월초부터 8월 15일 곧 일본의 「포츠담」선언 수락을 둘러싸고 많은 오해가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번역관이 여러 개의 결정적인 「오역」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묵살」이라는 일본말이었다. 이 말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옮겨 줄 수 있는 영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어가 같을 때에는 더 심각한 오해가 생기기 쉽다. 자동적인 경계장치가 풀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대한적십자 대표단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북한측 성명에는 『본회담에 참가하는 인원들을 매번 무사히 돌려보낼 것을 담보함』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담보」라고 할 때에는 『맡아서 보증하는 것』의 뜻이 된다. 곧 인질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보장」이라는 뜻으로 쓴 게 틀림없다. 그만큼 북한의 언어는 달라진 것이다.
남과 북 사이에는 27년 동안의 단절이 있었다. 그 단절은 언어에까지도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담보」를 「보장」으로 풀이할 수 있던 것은 이해의 힘이다.
앞으로 보다 활발한 대화가 있을 게 틀림없다. 사소한 「오해」도 있어서는 안될 대화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에의 노력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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