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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오르내린 한강주변 43시간|수위 따라 고조된 긴장과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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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강인도교의 수위가 이번에 11m24cm를 기록한 것은 1925년(을축년) 이래 47년만의 것이었다. 서울시 기록으로는 당시 인도교의 수위가 12m26cm. 뚝섬은 12m20cm, 여의도 13m55cm, 마포 17m80cm. 한강수위가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914년. 그러니까 이번 한강의 공포는 두 번째 규모에 해당되는 셈. 강우량으로는 2일 사이 서울지방 4백50mm가 내린 것이 관상대 관측개시해인 1906년 이후 처음이었다.
수해로는 을축년 대홍수로 일컬어지는 1925년에 서울시내에서 4백4명이 사망하고 침수면적은 총 5만9천여 정보. 가옥유실 4천9백76동, 가옥침수 및 붕괴 2만5천4백동, 전답유실 1만3천38정보, 농작물 피해 4만5천8백28정보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25년 이후 한강수위가 위험수위를 돌파한 것은 65, 66년 두 번이었고 경계수위 8m선을 넘은 것은 8번이나 된다. 이번에 한강수위가 현저히 불기시작, 19일 상오 1시부터 위험수위를 넘어 11m24cm사이에 이른 20일 밤 9시30분까지 43시간동안 한강인도교와 서울시 수해대책본부의 표정을 보면-.

<서울시 대책본부>
평균 하폭 1천2백m의 한강은 19일 상오 5시반쯤 경계수위 8m50cm를 넘고 정오에 위험수위인 10m50cm에 달하기까지 매시간 평균 35cm의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상오에는 계속 폭우가 쏟아지고 상류의 청평 「댐」은 25개의 수문을 통해 매초에 1만8천t의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고 있어 서울시 수해대책본부는 이날 정오를 기해 침수취약지구인 마포·용산·영등포지역 등 19개 동에 대해 주민 긴급대피령을 내리게 되었다.
위험수위를 넘어선 한강 물은 12시 이후부터 약간 누그러져 인천만의 간조시간인 6시까지는 시간당10cm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청평으로부터 한전의 무전은 남한강 상류로부터 여주 양평 등지에 계속 폭우가 쏟아지고 있으며 팔당부근 고안의 수위가 15m90cm로 계속 늘고 있다고 보고되자 대책본부는 다시 긴장, 한강연안과 중랑천 안양천 홍제천 등 제방감시를 강화, 횃불감시를 긴급지시 했다.
수해대책본부가 한숨 돌린 시간은 이날 밤 10시쯤. 계속 늘어나던 수위가 밤 9시 11m24cm를 피크로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모두 한숨을 내쉬는 듯한 표정들-.
대책본부는 인천의 만조가 20일 상오 l시에 있기 때문에 이때까지는 계속 수위가 늘어 날것으로 보고 이날 자정을 넘겨야한다고 판단했는데 예상보다 2시간 가량 빨리 물이 줄기 시작했다. 이종윤 서울시건설국장은 인천의 만조가 사리만조가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름과 그믐에 있는 사리만조 때 간만의 차이는 4∼5m에 달한다는 것. 평소의 만조보다 4∼5m 높은 사리만조가 겹쳤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한강인도교>
한강 인도교 수위측정본부가 설치되어있는 서울노량진경찰서 남한강파출소에는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시시 각각의 수위변화와 함께 긴박감마저 감돌았다. 수위측정본부는 이날 상오 11시45분까지만 해도 수위가 10m34cm여서 하오2시께 위험수위를 돌파할 것이라고 그런 대로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것이 단10분만에 16cm나 불어나 위험수위에 육박하자 본부 안팎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보고를 하자 차량전면통제지시가 잇달아 내려오고 수위를 확인하는 상부의 전화가 빗발치듯했다. 곧 제1한강교 양쪽입구에 바리케이트가 쳐지고 경찰은 삼엄한 경비에 들어갔다. 간간이 통행하던 시내 「버스」들도 다리입구에 멈췄으나 영문을 모르는 미군차량들은 통행을 고집, 경찰과 입씨름이 일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리를 건너는 통행인들도 불안한 걸음걸이. 하오 2시 수위가 10m80cm로 껑충 오르자 시민들은 통행 중에 변을 당할까봐 마구 뛰기도 했다. 이중엔 만약의 사태에 대비, 부대를 온몸에 감은 통행자도 있었다.
하오 3시 수위가 10m88cm로 올랐다. 사태가 자꾸만 심각해지자 경찰은 30명의 경찰관을 추가로 동원, 시민의 통행도 막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제1한강교부근은 발이 묶인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틈에 재미를 본 것은 다방과 음식점. 다리 부근의 다방과 음식점은 발묶인 시민들로 꽉 들어찼고 공중전화 「박스」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을 전하려는 초조한 모습의 시민들로 줄을 이었다.
5원 짜리 동전은 동이 나고 파출소엔 "어떻게 해야 집으로 갈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듯하고. 하오 4시15분 수위가 11m로 올랐다. 이때, 다리부근의 시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승용차를 타고 물구경 나온 30여명의 시민들은 소개령을 외면, 악착같이(?)강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또 한강연안에는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나무와 집기,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닭, 강아지 등을 상대로 건져내는 시민들이 숱했고 이날의 피크는 밤 9시. 이때의 수위가 11m24cm. 이때를 고비로 수위는 약간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측정본부도 수위가 내려감에 따라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었고. 차츰 생기를 되찾았다. <이량·이원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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