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기국회 석 달간 통과된 법안 0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12월 2일’은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이다. 헌법은 회계연도 개시일(1월 1일) 30일 전인 이날까지 예산안을 확정하도록 정해놓았다. 그러나 국회는 헌법이 정한 시한을 지난 10년간 위반해 왔다. 올해 11년째 위반을 앞두고 있다. 새누리당의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에 민주당이 ‘무기한 국회 보이콧’으로 맞서고 있어 1일 현재 예산 협의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그래서 예산안의 2일 통과는 “기적이 일어나도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관계자들의 말이다.

 법정시한 준수는커녕 올해 안에 처리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내년 1월 1일부터 예산안 없이 ‘준예산’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한국판 셧다운(정부 일부 폐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예산안뿐이 아니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된 법안은 1일 현재 ‘0건’이다. 본회의 통과를 앞둔,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도 거의 없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 을 100여 개·50여 개씩 선정한 상태지만 지금 같은 속도로는 대부분 처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는 10일 끝나는 정기국회 회기까지 본회의는 네 번 남아 있다.

 대선을 치르며 여야가 경쟁한 지난해에도 12월 2일 전에 119개의 법안이 처리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던 2011년에도 같은 기간 동안 55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평생 정치를 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며 “도대체 이런 국회가 왜 필요한 건지, 국민적 저항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박찬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경제활성화를 위해선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관련 법안이라도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규제가 풀리지 않아 기업 투자가 늦어지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정기국회가 최악의 비생산적 국회가 될 조짐을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제를 놓고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벌이는 힘겨루기 때문이다.

여야가 막다른 곳까지 가다가 결국 올해 안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준예산은 국회가 정부에 ‘돈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며 "이는 갓난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 걸려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공무원 월급과 정부 유지비 등을 제외한 각종 예산이 모두 중단되기 때문에 아이들 양육수당(20만원)은 물론 기초연금(20만원)까지 집행이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또 공공기관 인턴 채용을 포함해 약 65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일자리 창출 사업,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재정지출도 중단된다.

 이런 점 때문에 내각제가 시행됐던 1960년 제3차 개헌 당시 헌법조항에는 ‘준예산’ 집행 시 내각은 총사퇴하고 의회는 해산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남발을 막으려 한 적도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일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이 예결위에 상정조차 안 된 상태에서 법정기한을 맞을 수는 없다”며 “(예산안 상정을) 더 이상 끄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2일엔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상정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예산안 단독 상정은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에 이은 날치기라고 반발하면서 예결위장 밖에서 민주당 의원들끼리 단독 심의에 착수했다.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국회 주변의 평가다.

세종=김동호 기자, 권호·김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