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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4대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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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약2천1백년전의 사람이 아련히 누워있다. 50세 가량의 귀부인. 물론 「미이라」화한 유체이다. 하지만 피하의 유결 조직이 아직 탄력을 잃지 않았으며, 고동맥의 빛깔도 신선한 사체의 동맥과 흡사했다. 실로 유구한 시공을 잊게 하는 당리이다.
최근 중공에서 보고된 호남 성장 사고 분의 경이는 그것뿐이 아니다. 1천 점이 넘는 부장품들도 나왔다. 견직물·식품·약초 등이 들어있는 죽상은 방금 공인이 일손을 놓은 듯이 온전하다. 본지사진화보에 소개된 죽간·화장상자·이전·이배 등은 그 모양도 선명하고, 제작기술이 여간 정교하지 않다. 고분의 주인공은 서한초대 이창후의 왕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따라서 서한초기시대의 역사·문화·수공업·농업·의약·방부 기술 등을 연구하는 중요한 가치로 평가된다.
지난 3월 일본 나량의 명일향촌에서 발굴된 고송총도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른바 「아스까」 시대의 장식고분으로, 그 속의 채색 명미한 벽화는 우리의 감동마저 자아냈었다. 고구려문화의 영향이 역력한 벽화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사학자들은 그 의상하며, 사신도나 인물상을 고구려의 고분과 쉽게 비교했다. 일본의 「아스까」문화는 백제 성왕이 불상을 전해준 552년에서 「대화개신」이 이루어진 645년까지를 말한다. 「아스까」의 고분은 약 1천4백년전의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우리 나라의 공주에선 무령왕릉이 발굴되었다.
71년7월 초순, 백제환대 무령왕의 합장 능으로 밝혀진 이 고분에선 1천4백 수십 년 전의 휘황찬란한 왕관이 나왔다. 능 내부의 벽면은 막 피어난 연꽃과 같은 무늬들로 가득했다. 왕관은 물론 용틀임의 은제 팔찌·금제 목걸이·귀걸이, 그리고 곡옥 등은 백제문화의 수준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우리의 역사적 유물 중에 이처럼 온전한 기록과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
우리는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68년에도 중국 하북성 만성에서 거대한 발굴이 있었다. 전한 시대의 중산정왕 유승의 합장 능. 일명 「만성고분」이라고도 한다. 「닉슨」대통령부처가 중공을 방문했을 때 바로 이 고분에서 발굴된 「금누옥의」를 관람했었다. 마치 우주복과 같은 의상에 장방형의 옥 판 2천6백90장을 금사로 엮은 것이다. 그밖에도 수레 수대와 말(마)10수필을 비롯해 동기·칠기·도기·금·은·옥기·유리기 등 2천8백 점의 부장품이 나왔다.
이러한 4대 고분발굴은 모두 동양문화권에서 이루어졌다. 새삼 동양역사의 그 무궁무진한 폭과 깊이에 감동한다. 지하에 묻혀 있는 동양 문화의 긍지를 오늘 동양의 제국은 어떻게 전승시키고 있는지, 다시금 숙연히 생각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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