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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가마 싸움|<안동 교대>성병희 교수 조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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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북 의성에서 행하던 「가마 싸움 놀이」가 최근 안동 교육대 성병희 교수에 의해 조사, 재구되었다.
성 교수는 최근 간행된 영남대 신라 가야 문화 연구소의 『신라 가야 문화』 제4집에서「의성 가마 싸움」을 자료로서 발표한 것이다.
성 교수에 의하면 「가마 싸움」 또는 「가마 놀이」라고 불리는 이 놀이는 의성읍에서만 거행되던 독특한 놀이로서 서당 학동들이 추석에 아사천을 경계로 해서 양파로 나뉘어 싸운 편싸움이었다.
의성에선 이미 「기와 밟기」가 재현된바 있는데 그것은 정월대보름날 부녀자들의 편싸움이다.
가마 싸움은 영기·수기를 비롯하여 사방기 등의 기치와 바퀴가 달린 가마를 도구로 해서 한편에 60명 가량을 일단으로 서당에서 가장 완력이 센 사람이 장수가 되었다.
이 놀이는 상대편을 공격해서 가마를 먼저 파괴하면 승리하는 것으로 음력 8월15일 추석대낮에 이루어졌으며 1905년까지 계속되었다. 성 교수는 1백50년 전인 영조년간부터 시작되었으며 의성에 신식학교가 세워진 1906년께까지 계속됐으리라 추정했다.
추석을 맞아 서당의 학동들이 이웃마을 서당 애들과 기운을 겨루던 이 놀이는 훈장의 추석 귀향을 틈타 열린 경축 행사였다. 이 지방엔 봉강 서당·향청 서당·삼일재·성무청 서당 등 4개 서당이 있는 남부 촌의 학동이 한편이 되고, 북촌의 덕록 서당이 한 「팀」이 되었다.
각 편은 각 30명씩 공격수를 두었는데 공격의 명수를 「박수」라 했다.
양편의 대오는 갖가지 기가 2열 종대로 서고 뒤에 수기·갑졸·가마가 섰다. 기는 장대와 한지로 만들었으며 영기·청도기·청룡기·백호기·주작기·현무기 각각 두 개씩이었다. 특히 장수를 뜻하는 수기는 「영남대도독수군병마절도사어사사령」으로 썼다.
가마는 가교와 사인교의 혼합으로 대체로 높이 1m, 세로 1m70cm, 가로 1m20cm의 상자모양으로 바퀴가 네 개. 바퀴의 직경은 50cm정도 목제였다.
이들은 기세를 올리기 위해 『앞에 가는 마부 어이야, 뒤에 가는 마부 어이야니 말 좋다 자랑 마라 내 말 좋다 자랑 마라』를 호창 했다.
적과 대치하면 진열산개와 팔매질을 하고 함성을 지른다. 이때 수비군은 일렬로 가마의 앞을 가로막고 적의 침투를 방어한다. 호위군이 약세해 밀리면 가마는 전진·후퇴하면서 적의 접근을 피하고, 동태 머리꾼도 방어에 협력한다.
적진이 교란돼 가마에 접근한 공격군은 손·발로 가마를 마구 부수고 여세를 몰아 수기를 비롯한 각종 기를 탈취, 개선한다.
성 교수는 이 가마 싸움은 남북 두 마을의 서당 학동들이 부락 단위로 뭉쳐 겨루던 투쟁적 경축희로서 몇 가지 의의가 있다고 풀이했다.
①사회 공동체 사이의 갈등, 특히 반상·권력·계급·학식 등의 대립이 이 싸움에서 표현됐으며 ②비록 학습기의 학동이나 6∼18세 유식자의 경축희였다. ③또 경축에 승리하면 그 서당이 모든 면에서 우수하며 과거급제 자도 많아지리라는 주술적 속신이 가미된 놀이였다. ④8월 추석에 열려 농산 감사의 성격도 가졌으며 ⑤강인한 한국 남아의 패기와 기상을 표현한 놀이로서도 평가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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