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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대주교 "부조리 개선, 철저히 복음적 방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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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현실정치 참여 문제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직분을 29일 재확인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의 구조를 용감하게 개선하며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 방법은 철저하게 복음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 대주교의 이날 발언은 2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함세웅 신부 등이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미사를 집전하는 등 현실정치 참여 행보를 계속해 온 것에 대한 일종의 견제로 보인다. 염 대주교는 지난 24일 서울 명동성당 강론에서도 “평신도의 정치 참여는 의무사항이지만 교회 교리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염 대주교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구장 영명(靈名·세례명)축일 축하미사를 봉헌했다. 영명축일은 사제나 신자가 가톨릭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聖人)을 기념하는 날이다. 염 대주교의 수호성인은 베드로의 동생이자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성 안드레아로 이날 미사는 축일(30일) 하루 전날 열린 것이다.

 염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를 먼저 언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 “성전 안에만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말했다. 염 대주교는 “(교황의 이번 권고는) 물질주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자 사랑과 나눔을 구호와 이상적인 외침, 이론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이라며 “우리가 정말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구장인 저를 비롯해 사제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많다”며 “기도 안에서 겸손한 자세로 묵상하며 애정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할 것”을 강조했다.

 염 대주교는 성경 마태오 복음 4장 17절도 인용했다. “사제의 사목 활동은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여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했다. 신자들에게는 “사제가 교회에 서약한 대로 주님과 일치하고 하느님 백성의 구원사업에 전념하도록 함께 기도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또 “교황님은 ‘좋은 사제(il buon sacerdote)’인지 아닌지는 백성이 기름부음을 받느냐 못 받느냐로 알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이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올 때 기쁜 얼굴로 나오면, 그 신자들은 사제에게서 기쁨의 기름으로 도유(塗油·기름부음)된 것”이라며 “사제들은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 신자들의 고통과 짐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는 교황대사관 참사관 줄리앙 카보레 몬시뇰(고위 성직자)과 조규만 주교 등 사제와 신자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예정된 미사였고, 교황님이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다가갈 것을 거듭 강조하셔서 나온 말씀이지 특별한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신준봉 기자

서울대교구=천주교는 교구 단위로 운영된다. 한국에는 군종교구까지 포함해 모두 16개 교구가 있다. 서울대교구는 1911년 대구대교구와 함께 생겨난 가장 오래된 교구 중 하나다. 덩치도 가장 크다. 서울대교구장은 대주교·주교 등 23명으로 구성된 주교회의의 일원이지만 수도 서울을 대표한다는 상징성 등으로 한국 가톨릭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염수정 대주교는 지난해 6월 25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제14대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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