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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도「칠엽 느티나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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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잎자루에 일곱 잎이 달렸다고 해서 마을 이름까지 「칠엽리」라고 했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 칠엽리-일명 「고춧골」의 쑥들 냇가에 용 틀임을 하며 버티고 선 느티나무 한 그루.
원 둥치의 3분의2 가량이 떨어져 나가 움푹 팬 채 쓰러질 듯 비스듬히 가지를 받치고 섰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곳에 묻히리라는 터줏대감 변무술 옹 (75)은 그가 홍안 소년이던 6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이 느티나무는 비를 피할 만큼 울창한 가지 숲이 하늘을 덮었고 밑 동치 둘레가 젊은이의 5아름 (8m 정도)을 넘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무도 고목이 되어 버린 것.
밑둥치에서는 높이 5m 너비 1m 가량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두께 80m에 둘레 3m60㎝ 밖에 안 남은 등치는 새순이 돋아나 자란 가지들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
마을 촌로들은 이 나무의 수령을 1천5백년 또는 2천년 이상으로 고집하고 있지만 적어도 1천년 정도 됐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이다.
천년 이상을 살아온 이 고목에도 얽힌 실화가 많아 칠엽리 옛 사람들은 피는 잎, 지는 가지 하나 하나에 길흉을 점쳐왔다.
잎이 한꺼번에 피는 해엔 풍년이 들고 세 차례로 나누어 피는 해엔 피죽도 쑤어먹기 어려운 흉년이 든다고-.
한때 하늘을 뒤덮고 치솟았던 가지들이 늙고 병들어 하나들씩 부러질 때도 거의 주민들이 곤히 잠든 한밤중이었다고 했다.
우지끈, 가지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이 마을 옛 사람들은 그때마다 『영목이 노했다』고 동녘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
19세 때 청도군 각북면 고산동에서 이 마을로 시집온 김상임 노파 (69)는 시집살이 3년 동안 태기가 없어 고민하던 중 이 느티나무 아래서 1백일을 기도한 끝에 태기가 있어 큰아들 (손수식·47)을 낳았다고 했다.
김 노파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한번도 이 고목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본 적이 없다는 것.
이 「일곱 잎」 느티나무는 또한 이 마을의 모습까지 뒤바꾸어 놓았다고 촌로들은 전했다.
60여년 전엔 노목의 서쪽 3백m 지점에 50여 가구의 마을이 있었다.
그 무렵 이 느티나무는 여름철인데도 마을 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갑자기 잎이 다 떨어지면서 반대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뒤 얼마 안돼 홍수가 져 온 마을이 물 속에 잠겨버렸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현재의 고춧골로 새집을 지어 이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데 옛 마을자리에는 손덕룡씨 (57)의 기와집 한 채만이 외로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부모를 여윈 손씨는 이사하지 말라는 부모의 유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눌러 산다는 것이다.
이렇듯 영목으로만 여겨온 순박한 옛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이면 이 고목 아래 제물을 차리고 당제를 지내왔다.
요즘은 미신 타파와 함께 고목을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일부 주민들은 3년만에 한차례씩 당제를 지낸다고 했다.
이와 아울러 이 나무에 대한 보살핌도 퍽 소홀해져 가고 있다.
옛날 같으면 나무 아래 얼씬도 못하던 동네 아이들이 요즘은 그 위에 올라가 낮잠을 자고 그네를 타거나 가지를 꺾는 등 놀이터로 삼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노목 바로 옆에 마을 회관을 세워 주변 풍치를 해치고 있다고 촌로들은 못마땅해했다. 【청도=이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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