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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다른 색깔 정치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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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유지혜
정치국제부문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두 달 전이었다. 기존 교황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도 그렇거니와, 지구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비유되는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 거침없이 단행하는 진보적 개혁 조치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욱 마음이 끌리는 것은 바로 약자를 감싸 안는 교황의 거짓 없는 모습이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분노한 것은 지금까지 딱 두 번이었다. 지난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교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전 세계 GDP의 90%를 차지하는 강대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전으로 피 흘리는 시리아 국민의 고통은 의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또 한 번은 이민자를 배척하는 유럽 국가들을 향한 것이었다.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다 수백 명씩 목숨을 잃는데, “유럽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느라 다른 이들의 울음 소리는 듣지 못한다”고 질타했다.

 공교롭게도 교황의 분노는 모두 정치 현안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제의 정치 참여’와는 다른 색깔이다. 교회가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독려하는 교황의 목소리에는 오로지 인도주의만이 전제돼있다. 그는 교회가 거리로 나가 할 일은 낮은 곳에 임해 약자를 돌보고 화합하는 것이라는 ‘어른’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바티칸에서 이뤄진 푸틴의 교황 알현만 봐도 그렇다. 당시 많은 이가 예상했던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1000년 묵은 갈등은 언급도 안 됐다. 교황은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러시아의 개입 촉구에만 주력했다. 국제사회가 같은 지적을 했을 때는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했던 러시아도 이번엔 교황의 이런 적극적 태도가 사태 해결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반겼다.

 피임약 건강보험 적용 반대 등 사회 문제 관여를 중시했던 미국 주교회의의 변화는 또 어떤가. 이들은 최근 회합에서 교회의 우선순위를 ‘빈곤층의 어려움 해결’로 재설정했다. 교황의 이념 성향 분석에 바빴던 외신들도 어느 샌가 얼굴이 종양으로 뒤덮인 남성에게 입맞추는 교황의 사진을 더 크게 다루고 있다.

 교황 자신도 27일 교황 권고에서 기득권층을 비판하며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정치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다. 나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사로잡힌 이들이 사슬을 끊고 나와 보다 숭고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사제의 이런 ‘정치 참여’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뿐일까 궁금하다.

유지혜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