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곧장 뻗은 길만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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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업의 비결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다. 인간관계를 잘 쌓으면 두루 잘 된다는 얘기다. [이타르 타스]

“서구 언론이 정형화해 놓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금융업자 사이먼 펜담-플래처의 말이다. “처음엔 2년만 있으려 했는데 벌써 7년이 됐다. 앞으로 더 있을 것 같다. 현지 실정에 맞춰 사업을 늘리다 보니 정말 유쾌하고 흥미로운 도전들을 맞이했는데, 그 덕분에 나는 더 나은 비즈니스맨이자 문제 해결사가 됐다.” 그는 자랑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사업이 늘 유쾌하기만 할까. 외국 사업가들에게 러시아는 두려운 존재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러시아 비즈니스맨은 범죄자에 더 가깝게 묘사되고 정직하게 일하려는 노력은 난공불락의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러시아에 온 사람들은 웬일인지 서둘러 떠나려 하지 않는다. Russia포커스는 러시아 체류 외국 사업가 및 전문가들의 의견, 학술 연구·비즈니스 연구를 분석해 비교문화 컨설팅사 전문가들과 협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러시아 비즈니스 ‘불문율’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우리에겐 낯설어 보이지만 러시아에서 성공한 외국인이 하는 값진 조언이다.

rule1 신뢰를 얻어라

사이먼은 르네상스애셋매니저스 사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이자 프런트 오피스 스태프 주임이다. 은행에서 처음 러시아 비즈니스 현실을 접한 그는 안개의 도시 런던에서 가져온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제안했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이 나왔지만 사업 성장 가능성을 믿게 된 순간부터 그들이 보여준 신뢰는 정말 놀라웠다”라고 사이먼은 회상한다. 협상 초기의 신중한 경계심은 소련 시절에 뿌리를 둔 러시아인의 특징이다. 협상이 시작되면 서로에게 지나친 요구나 조건을 고집하다가 긴 논쟁을 거친 후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게 그 시절에 굳어진 협상의 법칙이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신뢰는 필수 덕목입니다. 신뢰를 얻기는 힘들지만, 일단 얻게 되면 평생 지속됩니다.” 독일 출신 사업가 마티아스는 말한다.

rule2 감정에 솔직해라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 러시아인은 감정을 솔직하게 분출한다. 서양이나 동양 문화권 사람들에게 지나친 솔직함과 개방적인 행동은 예절에 어긋난 태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은 대화에 몰입하면 쉽게 에티켓을 무시하고 상대방의 어깨를 철썩 치기도 한다. 러시아에선 정상이다. 반면에 외국 파트너의 얼굴에 나타난 점잖은 미소를 러시아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면 그러한 자제력을 존중하기는 해도 그런 식의 미소는 러시아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rule3 격식에 얽매이지 마라

러시안은 신뢰가 쌓일수록 격식을 덜 차린다. 그래서 대화를 시작할 때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러시아인은 먼저 사업을 논의하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내놓은 뒤에야 비로소 상대의 안부와 날씨를 묻는다.

미국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예카테린부르크의 고급 호텔 체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윌슨이 스스로 겪어서 확신하듯이 대화 장소는 사무실이 아닐 공산이 크다.

“사업상 식사 자리가 흔히 이뤄진다. 비즈니스 만남은 약간 늦게 시작해 밤 늦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레스토랑들은 하루 중 어느 때를 가더라도 사업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런던이나 뉴욕이라면 거래는 주로 낮에, 사무실에서 진행되는데…. 회의실보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러시아인들이 회의실에선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신뢰를 얻을수록 그만큼 더 가까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과는 술 마시기 시합을 하지 않는 게 좋다.”

rule4 창조적으로 돌파하라

러시아와 미국, 중동에서 식품 납품 사업을 하고 있는 마르크는 이를 “러시아인의 최대 장점 중 하나”라고 말한다. “러시아에는 항상 기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이건 불가능해’라며 체념해 버리는 유럽인들과는 달리 러시아인은 정반대로 언제나 기회를 찾아 나선다. 러시아 사업가들이 창조적인 이유는 러시아에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발명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데 나는 내기를 걸 수도 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자질이다.”

곧은 길이 제일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점도 비상식적인 해결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러시아의 사업가들은 아직도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거대한 국영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이 말은 그들이 ‘더 안전한’ 국영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의 설명이다.

이 점에서 사업 파트너의 연령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50대는 소련 시절 성인이 된 이들로 이미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과거 노력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나이다. 40대라면 자신만의 ‘상한선’을 지키며 제때에 멈추려는 성향이 강하다.

마르크는 “하지만 이 ‘상한선’은 거래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올라간다! 이들의 채워지지 않는 정열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저돌적인 욕망 같은 것은 유럽에서는 슬슬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르다. 러시아인은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고 칭찬한다.

rule5 조언에 인색하지 마라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 소비에트들의 나라다.”

이 러시아식 유머는 외국어로 번역하면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소비에트(совет)’란 러시아 단어의 첫 번째 의미가 ‘조언, 충고’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유머에 담긴 러시아인의 특징 하나를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조언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70%가 자신들의 경험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자료 출처:러시아 직접투자기금)

안나 쿠치마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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